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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칭스페셜]한국의 '가난한' 휴머노이드 연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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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칭스페셜]한국의 '가난한' 휴머노이드 연구자들
"인간형 로봇은 로봇 분야 기초 연구, '로봇 강국' 꿈꾸려면 충분한 투자 필요"

4차산업혁명이 도래합니다.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로봇기술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로봇기술에 대한 평가는 남다릅니다. 세계적 로봇공학자들 사이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기술을 가진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라는 사실이 이런 평가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와이어드코리아는 디지털 런칭 기획으로 한국의 인간형 로봇 연구 현황을 분석합니다. 연구진의 현 상황과 역사, 발전 방향까지 짚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 편집자 드림

위이잉~. 위이잉~.

모터음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몸통과 하반신만 만들어 둔 검정색 로봇이 합판으로 만든 실험용 경사면 위를 한 발씩 힘겹게 걸어 오르고 있었다. 여러 로봇 연구실을 방문한 적이 있는 기자의 눈엔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날 설정한 경사도는 8도. 스키장의 중급자 슬로프에 해당하니 결코 낮은 경사는 아니다. 하지만 전기모터 방식의 휴머노이드(Humanoid, 인간형) 로봇이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최대 경사도는 10~12도 내외다. 그리 새롭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잠시 후 기자는 이전의 생각이 착각임을 깨달았다.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뭘 자랑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개발을 총괄하는 국민대 기계공학부 조백규 교수로부터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새로운 혁신이 이뤄졌다는 게 이유였다.

지금까지의 인간형 로봇은 바닥면의 경사를 계산하고자 관성측정장치(IMU)를 사용했다. 로봇의 걸음걸이와 이동속도를 측정해 몸체가 기울어진 각도를 계산하고, 거기에 맞춰 발을 옮긴다.

문제는 IMU가 수학의 ‘적분’을 거듭하는 방식이라 오차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 IMU 덕분에 인간형 로봇은 경사면을 두 발로 걸을 수 있었지만, 보행이 불안정하기도 했다.
 

한윤호 국민대 박사과정생이 로봇 ROK-3의 보행능력을 테스트하고 있다. [사진=RcLab/국민대]
국민대 한윤호 박사과정생이 로봇 ROK-3의 보행능력을 테스트하고 있다. [사진=RcLab/국민대]

조 교수가 이끄는 로봇 연구팀 ‘알씨랩(RcLab)’은 이 점에 주목했다. 로봇의 발목 모터에 가해지는 부담(토크)을 측정하고, 이 신호 값을 이용해 다시 경사를 측정하자는 아이디어를 내 놨다. 18일 오후 서울 성북구 국민대 공학관을 방문한 자리. 기자는 IMU 없이 경사면을 걸어 오른 전기모터형 인간형 로봇의 첫 탄생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조 교수는 “IMU는 장점이 많아 아직은 필수적이지만 오작동하거나 고장인 경우가 적지 않아 이런 기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 연구를 '로봇 공학사에 한 획을 그을 성과'라고 부르기엔 다소 과장될 수도 있지만 그 성과가 연구비 0원, 사실상 공짜로 개발됐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누가 이 성과에 불만을 표할 수 있을까.  

부족한 연구비, 20대 초중반의 젊은 학생들이 대부분인 연구진, 실험할 공간조차 부족한 비좁은 연구실.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 연구실이 수십, 수백억 원의 투자를 받아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의 인간형 로봇 연구자들이 처한 현실은 ‘가난’이라는 단어 이외에는 대변하기 어렵다. 그곳에서 그들은 ‘세계 최고’에 도전하고 있었다.

◆한국 ‘인간형 로봇’이 처한 현실

대한민국 인간형 로봇 연구진의 최대 골칫거리는 언제나 ‘부족한 연구비’다. 투자자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하는 까닭이다. 정부 연구비를 집행하는 사람들은 ‘국가가 세금을 투입할 만한 기초학문이 아니지 않느냐’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고 산업분야 연구비를 지원받기엔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결국 연구자들은 ‘알바’에 눈을 돌린다. 다른 실용적 기계장치를 개발해 주는 대가로 돈을 받고, 거기서 남는 부품들을 긁어모아 로봇을 만든다.

한국의 인간형 로봇 선구자는 KAIST의 오준호 교수다. 한국 최초의 인간형 로봇 휴보(HUBO)를 개발하고 15년 넘게  연구팀을 이끌며 한국의 인간형 로봇 기술 개발을 주도해왔다. 그가 이끄는 연구팀은 2015년 미국 국방성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주최한 세계재난로봇경진대회(Darpa Robotics Challenge)에서 우승했다.

오 교수가 이끌던 ‘KAIST 휴머노이드로봇 연구센터’는 국제적으로도 최고의 로봇 연구팀 중 하나로 꼽힌다. 가히 한국 로봇 연구계의 ‘대부’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이런 오 교수조차도 몇 해 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주로 산업분야 연구비를 받아 쪼개 썼지, 제대로 장기간 투자를 받은 기억은 없다”고 했다.  

국민대 팀도 입장은 마찬가지다. 조 교수는 오준호 교수의 제자로 '달리는 인간형 로봇'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발해 냈던 인물. 그가 RcLab 연구진들과 만들고 있는 인간형 로봇 이름은 'ROK'다.

1호기는 프레임만 실험적으로 만들어 본 모델이었고, ROK-2는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개최됐던 이벤트 경기 ‘스키로봇 챌린지’에 참가하기 위해 별도의 연구비를 받아 만들었다. 보행 기능보다는 스키 기능이 뛰어나다. RcLab이 휴머노이드 로봇의 기본인 ‘보행기능’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결국 ROK-3부터인 셈이다.

조 교수는 “2016년 학교 지원금으로 어디든 사용해도 되는 연구비 1억 원 정도를 받았다”며 “휴머노이드 로봇은 그 돈을 아껴 쓰면서 지금까지 연구하고 있고, 부족한 부분은 다른 로봇을 만들고 남은 부품을 재활용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끝없는 도전, “목표는 세계 대회 우승”

다른 연구팀 실정은 어떨까. 2019년 현재 한국에서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인간형 로봇을 개발 중인 곳은 KAIST 이외에 서울대, 국민대, 한양대, 서울과학기술대 등 5~6곳에 불과하다.

한양대 한재권 로봇공학과 교수가 이끄는 팀 ‘히어로즈(HERoEHS)’를 찾았다. 한 교수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로 재직 중인 한국계 미국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의 제자로 미국 유학시절부터 로봇 전문가로 불렸다.
 

한양대 한재권 로봇공학과 교수팀이 개발한 축구로봇 '앨리스'. [사진=한희재/와이어드코리아]
한양대 한재권 로봇공학과 교수팀이 개발한 축구로봇 '앨리스'. [사진=한희재/와이어드코리아]

현장에서 본 히어로즈의 사정은 국민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교수는 연구실 공간이 부족해 교수 앞으로 지급된 개인실의 책상을 빼 버렸다. 그곳에 3D프린터와 레이저커팅기를 들여 놓고 로봇 부품을 직접 만들어 쓰고 있었다.

2018년 스키로봇챌린지 당시엔 로봇을 만들 연구비를 일부 지원받았지만, 비용이 부족해지자 소셜미디어를 통해 국민모금을 진행해 부족한 연구비를 충당한 적도 있다. 이렇게 개발한 스키 타는 인간형 로봇 ‘다이애나’는 사람과 비슷한 동작으로 스키를 타는 유일한 로봇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다.

한 교수팀이 최근 개발 중인 인간형 로봇의 이름은 ‘앨리스’. 히어로즈 팀이 자랑하는 축구로봇이다. 2020년 프랑스에서 열리는 로봇들의 축구대회 ‘로보컵’에서 우승하는 것이 목표다. 

한 교수는 “인간형 로봇 연구는 로봇 기술 발전을 위한 기초연구에 해당하는데, 미국에서  연구하던 시절에 비하면 한국에선 투자가 너무나 부족하다”며 “이런 현실에서 세계와 경쟁하고 있는 한국 인간형 로봇 연구진의 노고는 결코 말로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과학은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로봇을 만들고 싶다, 조금이라도 사람을 닮은 기계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한국 로봇연구자들의 공학적 호기심은 그렇게 알음알음 유지되고 있었다.
 

한양대 로봇공학과 한재권 교수(가운데)가 연구실 학생들과 함께 로봇 '앨리스' 앞에 섰다. [사진= 한희재/와이어드코리아]
한양대 로봇공학과 한재권 교수(가운데)가 연구실 학생들과 함께 로봇 '앨리스' 앞에 섰다. [사진= 한희재/와이어드코리아]
와이어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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