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의 대표주자는 KAIST 오준호 교수 연구진이 개발한 ‘휴보’ 시리즈가 꼽힌다. 시초는 2002년 KAIST에서 개발한 KHR-1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머리가 없고, 두 다리만 달린 실험용 모델로, 당시 외신에선 KAIST의 머리 없는 로봇(KAIST Headless Robot)이라고 불렀다.
기본적인 보행기능을 모두 갖춰 앞, 뒤로 걷고 방향 전환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정성이 떨어져 완전한 평지가 아니면 넘어지는 일이 잦았다.
1년 후 등장한 KHR-2는 성능과 안정성이 한결 좋아졌고 평지라면 어디든 걸어다닐 수 있었다. 다시 1년 후인 2004년 보행능력과 안정성을 한층 더 높인 KHR-3가 등장했다. 이 로봇의 애칭이 대중에 잘 알려진 휴보(HUBO)다.
휴보는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 연구진은 이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 변형 로봇을 개발하기도 했다. 2005년엔 휴보의 몸체에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머리를 얹은 ‘알버트 휴보’와 사람이 탑승할 수 있는 탑승형 인간형 로봇 ‘휴보 FX-1’도 선보였다.
그리고 4년 후인 2009년. 연구진은 KHR-4, 이른바 휴보-2를 선보인다. 휴보 1에 비해 월등하게 가볍고, 운동능력도 뛰어나다. 걸을 뿐 아니라 달리기를 할 수도 있었다. 휴보-2는 일본 혼다의 인간형 로봇 '아시모', 도요타의 '파트너'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달리기에 성공했다.
이후 연구진은 미국국방성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세계 재난로봇경진대회(DRC)에 참여하면서 2대의 로봇을 새롭게 개발했다. 2013년 소개한 DRC휴보, 2015년 소개한 DRC휴보2(DRC휴보 플러스(+)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다. DRC휴보2로 휴보 연구진은 DRC 대회에서 미국항공우주국(NASA), 록히드마틴 등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해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최근 휴보 연구진은 휴보의 하체 운동성능을 한층 높인 새로운 로봇 ‘가젤’을 개발 중이다. 하체뿐이지만 안정성과 운동능력이 월등하게 높아져 화제다. 한국에서 개발한 인간형 로봇 중 유일하게 비포장 도로 보행이 가능하다.
2000년대 초반, 휴보와 비견되던 한국의 인간형 로봇으로는 ‘마루’가 꼽힌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범재 인지로봇연구단 박사팀이 개발했다. 마루는 총 다섯 개의 시리즈로 제작됐다. 마루1, 마루2, 마루3, 마루M, 마루Z 등이다.
2010년 마지막으로 제작된 ‘마루Z’는 자율보행 능력과 목표물을 조작하는 시각 기반 조작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전자레인지를 켜거나 토스트를 굽는 등의 동작이 가능했다. 다만 KIST 연구진이 마루 연구를 중단해 더 이상의 성능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밖에 KIST내에서 또 다른 로봇을 개발해 발표했는데 이름은 ‘키보’다. 이 로봇의 보행패턴은 KAIST 휴보 연구팀 일원이었던 김정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개발해 준 것으로 사실상 휴보의 사촌으로 볼 수 있다.
기업 연구진의 시도도 눈에 들어온다. 삼성 종합기술원에서도 2012년 인간형 로봇 ‘로보레이’를 개발했었다. 이 로봇은 삼성이 독자적으로 개발했지만 초기 연구과정에서 KIST 마루 연구진과 공동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한국미래기술'이라는 민간기업에서도 인간이 탑승할 수 있는 4m 크기의 대형 인간형 로봇을 2016년 소개한 바 있다. 이 역시 김정엽 교수 등 휴보 연구진들이 개발에 참여했다.
한국 로봇 솔루션 기업 로보티즈가 개발한 로봇 ‘똘망’은 KAIST와 KIST 이외에 인간형 로봇으로 가장 유명한 로봇 중 하나다. 가격경쟁력이 높고, 개조하기도 손쉬워 DRC 대회에서 많은 연구진이 이 로봇을 구입해 출전한 바 있다. 똘망은 지난 2016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 대학 연구진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휴보 연구진 출신의 연구자들이 대학 교수 등으로 임용되며 독립적인 연구팀을 꾸린 경우다. 국민대 조백규 교수 팀은 로봇 연구팀 알씨랩(RcLab)을 꾸리고 인간형 로봇 ‘ROK’ 시리즈를 개발 중이다. 서울과학기술대 김정엽 교수도 인간형 로봇 수보(SUBO)를 개발하고 있다.
이밖에 서울대 박재흥 교수 연구팀이 독립적으로 인간형 로봇을 개발 중이다. 로보티즈 연구원 출신의 한양대 한재권 교수도 로봇 연구팀 ‘히어로즈(HERoEHS)’를 꾸리고 여러 종류의 인간형 로봇을 선보이고 있다. 스키로봇 ‘다이애나’(DIANA)와 축구로봇 ‘앨리스’(ALICE)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