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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칭스페셜]코리안 휴머노이드 ‘휴보’ 15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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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칭스페셜]코리안 휴머노이드 ‘휴보’ 15년 라이프
‘로봇 강국 코리아’ 브랜드 일군 일등 공신이자 한국 로봇 기술의 자존심

4차산업혁명이 도래합니다.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로봇기술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로봇기술에 대한 평가는 남다릅니다. 세계적 로봇공학자들 사이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기술을 가진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라는 사실이 이런 평가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와이어드코리아는 디지털 런칭 기획으로 한국의 인간형 로봇 연구 현황을 분석합니다. 연구진의 현 상황과 역사, 발전 방향까지 짚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 편집자 드림

 눈앞에서 바라본 로봇은 마치 살아있는 듯 보였다. 두 발로 성큼성큼 걷고, 손가락 5개를 움직이며 물건을 집어 보이기도 했다. 로봇은 온 몸에 모터와 전깃줄을 드러내곤 있었지만 ‘나는 살아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로봇 ‘휴보’가 처음 태어난 것은 2004년 12월이다. 기자가 휴보를 처음 만난 것은 그보다 조금 이른 2004년 여름. KAIST 기계공학과 오준호 교수 연구실에서 아직 채 다 태어나지도 못했던, 뼈대만 드러내고 걸음마를 계속하던 모습이었다. 이 로봇은 이후 한국 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게 된다. 휴보는 15년 간 어떤 성장을 해 왔을까.
 

2015년 6월 미국에서 열린 'DRC' 대회 최종 결승전. 휴보가 전동공구를 들어 벽에 구멍을 뚫는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전형준/KAIST]
2015년 6월 미국에서 열린 'DRC' 대회 최종 결승전. 휴보가 전동공구를 들어 벽에 구멍을 뚫는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전형준/KAIST]

◆‘두 발로 걷는’ 로봇 만든 세계 두 번째 국가

한국의 휴머노이드(Humanoid, 인간형) 로봇을 이야기 하면서 KAIST에서 개발한 ‘휴보’를 빼 놓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 인간형 로봇의 역사이자 산실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대표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2000대 초반. 당시만 해도 일본 이외의 나라에서 인간형 로봇 개발에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와세다대 연구진을 주축으로 인간형 로봇을 연구해 왔다. 이 연구진이 민간 기업 혼다, 일본 산업기술연구소(AIST) 등으로 진출하며 인간형 로봇 기술의 기틀을 닦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인간형 로봇 ‘아시모(ASIMO)’는 사실상 50년에 걸친 기초과학 투자가 낳은 결실인 셈이다.

반대로 한국은 관련 연구를 해 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휴보 연구진은 그 당시를 ‘맨땅에 헤딩하던 시절’이라고 표현한다. 아무것도 모르다보니 시행착오를 겪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오 교수는 “별의 별 짓을 다 해봤다”면서 “사람의 두 손을 묶어 놓고 걷게 한 다음, 발 움직임을 비디오로 촬영해 분석하기까지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런 노력 끝에 휴보 연구진은 2002년,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기계를 처음으로 만들어내게 된다. 이 로봇의 이름은 KHR-1. 한국 인간형 로봇(Korean Humanoid Robot)의 머릿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실험용으로 하체와 몸통만 만든 로봇이라 머리 조차 붙이지 않았다. 그래도 기계공학자들 사이에선 큰 화제가 됐다.당시로선 보기 어려운 인간형 로봇이 새로 등장했기 때문. 외신에선 KHR을 두고 ’KAIST의 머리 없는 로봇(KAIST Headless Robot)‘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국형 휴머노이드의 탄생

KHR-1은 기본적인 보행기능을 갖춰 앞, 뒤로 걷고 방향 전환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정성이 떨어져 걸을 때 마다 몸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완전한 평지가 아니면 보행이 어려웠다. 대부분의 보행실험은 트레드밀(러닝머신) 위에서 진행해야 했다.

1년 후 개발한 후속 모델, ‘KHR-2’는 이보다 훨씬 성능이 높아졌다. 인간형 로봇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능력을 모두 갖고 있었다. 발바닥 밑에 고무패드를 붙이고, 무릎 관절 등에도 쇼크업쇼버(충격흡수장치)를 달아 안정성을 높였다.
 

휴보 탄생까지의 개발과정. 왼쪽부터 실험용 모델 KHR-1, KHR-2, KHR-3(휴보). [사진=KAIST]
휴보 탄생까지의 개발과정. 왼쪽부터 실험용 모델 KHR-1, KHR-2, KHR-3(휴보). [사진=KAIST]


그 이듬해인 2004년. KHR-2의 성능을 높여 휴보 연구진은 마침내 로봇 ‘휴보(KHR-3, HUBO)’를 공개하기에 이른다. KHR-2를 기본으로 안정성과 출력을 한층 더 높이고 디자인을 매끈하게 다듬은 것이 휴보다. KHR-2는 사실상 휴보 시리즈의 원형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다만 KHR-2가 실험용 모델이라면 휴보는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로서 대중에 공개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후 연구진은 휴보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 변형 로봇을 개발해 선보였다. 휴보의 몸체에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얼굴을 붙여 만든 ‘알버트 휴보’, 휴보의 다리 부분을 크게 만들고 의자를 설치해 사람이 탈 수 있도록 만든 탑승형 보행 로봇 ‘휴보 FX-1’도 선보였다. 이 두 대의 로봇은 2005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에서 공개돼 세계 정상들의 주목을 한 눈에 받았다.

◆세계 인간형 로봇 연구자들의 ‘플랫폼’

2005년 이후 휴보 연구진은 로봇의 기본 성능을 한층 더 높이기 위해 새로운 로봇을 처음부터 다시 개발하기 시작했다. 세계 인간형 로봇 연구진이 두루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완성하겠다는 목표였다.

인간형 로봇을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일단 로봇 몸체를 사온 다음, 제어소프트웨어를 일부 수정하거나 직접 만들어 가면서 로봇의 제어기술을 연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안정성 높은 플랫폼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2009년 개발된 휴보2. [사진=KAIST]
2009년 개발된 휴보2. [사진=KAIST]

4년 후인 2009년. 휴보 연구진은 KHR-4, 이른바 휴보2의 개발에 성공했다. 휴보2는 키가 125㎝로 휴보1과 같지만 무게는 37㎏(배터리 제외)으로 20㎏가량이 줄어들었다. 반대로 출력은 더 좋아져 훨씬 더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일본 혼다의 인간형 로봇 '아시모', 일본 도요타의 '파트너'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달리기에 성공한 모델로 기록됐다. 달린다는 말은 단순히 빨리 걷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두 다리가 교차될 때마다 공중에 뜨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2019년인 현재도 달리는 로봇을 처음부터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휴보2를 원하는 곳은 적지 않았다. 세계적인 기업 구글에서도 휴보를 연구용으로 구입해 갔다. 미국과 싱가포르 등의 대학 연구진들도 잇따라 휴보를 주문했다. 휴보2가 등장하자 즉시 들어온 주문만 10여대가 넘었다. 가격은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대당 5~6억 원 사이다.

휴보2는 지금도 구입할 수 있다. 휴보 연구팀이 창업한 로봇 기업 ‘레인보우 로보틱스’를 통하면 휴보2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휴보를 주문할 수 있다.

◆뛰었으면 춤춰라

휴보2가 완성된 이후 연구진의 다음 행보는 ‘운동능력 확보’로 이어졌다. 이는 해외 기술진의 약진에 자극을 받은 탓이다.

2010년 무렵 미국 보스턴다이나믹스 등 로봇기업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얼음판에서도 넘어지지 않는 네발로봇 빅독, 울퉁불퉁한 돌길 위도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인간형 로봇 ‘펫맨’ 등이 공개되면서 수많은 로봇개발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KAIST 연구원들이 로봇 휴보2의 운동능력을 실험하고 있다.[사진=전승민/와이어드코리아]
KAIST 연구원들이 로봇 휴보2의 운동능력을 실험하고 있다.[사진=전승민/와이어드코리아]

이 시기에 휴보 연구진은 이 점을 주목해 로봇의 운동성능을 한층 높이는데 주력했다. 태권도 시범을 보이거나, 격렬한 힙합댄스 동작을 구현해 내는데 성공한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공을 집어 올리는 등 여러 가지 동작을 실험하는 일도 잦아졌다.

사람은 지하철을 타기 위해 뛰어가면서도 가방을 뒤져 물건을 꺼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로봇은 손으로 일을 하면서 동시에 균형을 잡는 일을 알아서 해내지 못한다. 상체와 하체를 분리해서 사용하도록 돕는 ‘전신제어(Whole body Control)’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휴보 연구진은 2011~2012년 무렵 이 기술 개발에 한층 더 주력했다.

휴보 연구진은 왜 이런 일을 했을까. 그 목적은 따로 있었다. 지금까지 걷고, 달리는 동작을 구현하는데 만족했다면, 이제는 로봇에게 실제로 일을 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NASA 누르고 세계 재난로봇대회 ‘우승’

휴보2를 바탕으로 전신제어 기술을 개발한 휴보 연구진은 또 다시 새로운 로봇 개발에 들어간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이 당시 누군가 원전에 들어가 냉각수 밸브를 잠글 수만 있었다면 2차 폭발은 면할 수 있었을 거라는 전문가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원전 폭발 현장에 들어가 사람대신 복구작업을 할 수 있는 로봇은 그 당시 단 한 대도 개발된 것이 없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미국국방성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로봇 연구자들이 원전 복구 로봇을 만들 수 있는지 실력을 겨뤄보자’며 로봇 경진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DARPA가 개최한 로봇 대회. DRC(DARPA Robotics Challenge)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 언론에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재난로봇경진대회’라는 이름으로 적는 경우가 많았다.
 

휴보 연구진이 로봇 DRC휴보2를 이용해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위를 걸어가는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전형준/KAIST]
휴보 연구진이 로봇 DRC휴보2를 이용해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위를 걸어가는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전형준/KAIST]

이 대회에 달려든 세계 로봇 연구진은 쟁쟁하기 그지없었다. 자율주행차 상용화의 길을 닦은 바 있는 미국 카네기멜론대 연구진 등도 참가했다. F22, F-35 스텔스 전투기를 만드는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도 참가했으며,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도 두 팀이 출전했다. 화성에 우주탐사 로봇을 보낸 적이 있는 ‘나사 제트추진연구소(JPL)’도 포함돼 있었다. 대회 공식 플랫폼 로봇으로 보스턴다이나믹스가 개발한 로봇 ‘아틀라스’를 지급받은 곳이 많았다. 미국의 세계적인 로봇연구진 IHMC로보틱스도 아틀라스를 지급받아 대회에 나왔다.

휴보연구팀은 2013년 ‘DRC휴보’를 개발해 예선대회에 참가했으나 안타깝게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2015년 성능을 한층 더 높인 ‘DRC휴보2’를 개발해 다시금 대회에 참여한다. 주저앉으면 무릎에 붙은 바퀴로 굴러서 이동할 수도 있는 변신형 로봇이다.

결국 로봇 휴보는 4년이나 진행된 이 대회에서 2015년까지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우승 상금 상금 200만 달러(약 23억2900만 원)을 거머쥐며 세계 로봇공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성능 더 높일 것” 끝없는 도전

DRC 대회를 계기로 인간형 로봇의 성능은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두 발로 걷는 로봇을 보는 건 어렵지 않으며, 인간크기의 인간형 로봇이 축구시합을 벌이는 ‘로보컵’ 대회도 매년 개최되고 있다.

휴보 연구진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휴보 FX를 한층 더 새롭게 개량한 ‘휴보 FX-2’를 만들어 성화 봉송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이후 휴보 연구팀의 행보는 한층 더 미래지향적이다. ‘휴보 아빠’로 불리는 오준호 KAIST 교수는 정년을 앞두고 다시금 독자적인 연구에 나섰다. ‘이제는 로봇을 만드는 부품, 소재기술을 국산화해야 할 때’라며 유압장치, 감속기 등 핵심기술 전반의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하고 있다.

한국전기연구원, 서울과학기술대, 국민대와 함께 진행 중인 ‘고속·고출력 로봇 핵심부품 및 지능 원천기술 개발’ 과제에 참여하고 있다. 이 밖에 ‘휴머노이드 로봇 원천기술 및 표준 플랫폼 개발’이라는 연구 과제도 단독으로 수행하고 있다.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지금도 로봇 부품을 직접 만지고 있는 것이다.

KAIST 휴보 연구진도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휴보의 운동능력을 한층 높인 새로운 로봇 ‘가젤’을 개발 중이다. 한국에서 개발한 인간형 로봇 중 유일하게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 보행이 가능하다.

휴보는 국내 로봇공학자 사이에서 ‘한국형 휴머노이드’의 길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휴보 연구실 출신으로 ‘달리는 휴보’를 개발한 바 있는 조백규 국민대 교수는 “(지금까지 쌓아온) 휴보팀의 연구성과는 미래형 인간형 로봇 개발을 위한 기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와이어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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