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보건과 개발, 교육 그리고 기후변화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싶어 이사직에서 물러난다."
지난 13일 빌 게이츠는 자신의 링크드인에 마이크로소프트(MS)와 버크셔 해서웨이 이사직에서 동시에 사임한다는 글을 올렸다. 빌 게이츠는 1975년 대학을 중퇴하고 폴 앨런과 함께 MS를 공동 설립했다. 1986년 주식이 상장되며 이사회 의석을 차지한 빌 게이츠는, 34년이 지나 이사회에서도 물러난다.
다만 두 곳과 완전히 인연을 끊는 건 아니다. 빌 게이츠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창업자인 워런 버핏과는 오랫동안 가장 친한 친구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빌앤멜린다게이츠 재단 이사로서 우리의 파트너십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MS에 대해서도 "언제나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회사의 비전과 목표를 위해 사티아 나델라 대표와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빌 게이츠는 앞으로 MS의 기술 고문으로 활동한다. 나델라 대표는 이날 MS 홈페이지를 통해 "그동안 빌 게이츠와 함께 일한 건 엄청난 영광이자 특권이었다"며 "MS는 빌 게이츠의 지속적인 기술 조언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빌 게이츠, 소프트웨어의 역사를 쓰다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의 역사 그 자체로 평가된다. 컴퓨터 업계가 하드웨어에 집중하던 1970년대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컴퓨터를 사면 프로그램이 무료로 따라와야 한다는 인식이 많았다. 소프트웨어를 유료화해야 한다는 빌 게이츠의 주장은 큰 논란을 낳았으나 동시에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80년, MS는 당시 최대 컴퓨터 업체였던 IBM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IBM이 개발한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OS)를 개발해달라는 연락이었다. MS는 IBM의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로 도스(DOS)를 개발하고 공급했다. 1985년 윈도우 1.0버전을 시작으로 92년 3.1버전과 95년 95버전을 차례로 시장에 안착시키며 본격적인 '윈도우 시대'를 열었다. 윈도우는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보였고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빌 게이츠가 항상 긍정적인 평가만 받았던 건 아니다. MS는 독점적인 컴퓨터 OS에 윈도우 익스플로러 등 브라우저와 메신저, 미디어 플레이어 등을 포함한 '끼워팔기' 마케팅으로 여러 차례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다. 1997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1998년 미국 법무부는 MS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 판 것에 대해 위법 판정을 내렸다. 당시 MS는 미국 각 주별로 합의금을 내야 했고 EU에서도 4억 9700만 유로(약 6640억 원)의 벌금을 냈다.
윈도우 3.0 버전과 3.1 버전은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연이어 등장한 윈도우95가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MS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가 되었다. 다만 OS 시장에서 독점이 심화되며 회사를 분할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빌 게이츠는 2000년 MS의 멤버이자 친구인 스토브 발머에게 대표직을 물려줬다. 2006년까지는 최고소프트웨어아키텍트를 맡았고, 2008년 MS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한 뒤 이사회에서 활동해왔다.
◆자선 사업가로 변신한 빌 게이츠
빌 게이츠는 2000년 본격적으로 자선 사업에 뛰어들었다. 빌 게이츠의 아내인 멜린다 게이츠는 50억 달러(약 6조 530억 원)를 출연해 빌앤멜린다게이츠 재단을 만들었다. 소프트웨어로 대표되던 빌 게이츠가 자선 사업에 뛰어든 건 파격적인 행보였다.
재단은 설립 후 세계보건기구(WHO), 유니세프, 에이즈퇴치기금 등에 기부했으며 유엔난민기구와 함께 난민 건강 등 여러 문제를 현대적으로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서 소아마비를 퇴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세계 각지의 자선단체와 손잡고 '전염병 대비 혁신 연합(CEPI)'을 출범했다. 전염병 백신을 개발하고 비축하기 위해서다.
전염병에 관심이 많은 만큼, 빌 게이츠는 은퇴 후 코로나19 예방과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빌앤멜리나게이츠 재단은 지난 25일 "존슨앤존슨 등 다양한 기업과 협력해 코로나19 백신과 진단키트,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단은 해당 기업들과 이달 초 전화 회의를 갖고 구체적인 조치를 논의했다. 재단은 "앞으로 두 달 안에 생체실험을 하는 걸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빌 게이츠는 자신의 링크드인에 마이크로소프트(MS)와 버크셔 해서웨이 이사직에서 동시에 사임한다는 글을 올렸다. 빌 게이츠는 1975년 대학을 중퇴하고 폴 앨런과 함께 MS를 공동 설립했다. 1986년 주식이 상장되며 이사회 의석을 차지한 빌 게이츠는, 34년이 지나 이사회에서도 물러난다.
MS에 대해서도 "언제나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회사의 비전과 목표를 위해 사티아 나델라 대표와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빌 게이츠는 앞으로 MS의 기술 고문으로 활동한다. 나델라 대표는 이날 MS 홈페이지를 통해 "그동안 빌 게이츠와 함께 일한 건 엄청난 영광이자 특권이었다"며 "MS는 빌 게이츠의 지속적인 기술 조언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빌 게이츠, 소프트웨어의 역사를 쓰다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의 역사 그 자체로 평가된다. 컴퓨터 업계가 하드웨어에 집중하던 1970년대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컴퓨터를 사면 프로그램이 무료로 따라와야 한다는 인식이 많았다. 소프트웨어를 유료화해야 한다는 빌 게이츠의 주장은 큰 논란을 낳았으나 동시에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80년, MS는 당시 최대 컴퓨터 업체였던 IBM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IBM이 개발한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OS)를 개발해달라는 연락이었다. MS는 IBM의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로 도스(DOS)를 개발하고 공급했다. 1985년 윈도우 1.0버전을 시작으로 92년 3.1버전과 95년 95버전을 차례로 시장에 안착시키며 본격적인 '윈도우 시대'를 열었다. 윈도우는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보였고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빌 게이츠가 항상 긍정적인 평가만 받았던 건 아니다. MS는 독점적인 컴퓨터 OS에 윈도우 익스플로러 등 브라우저와 메신저, 미디어 플레이어 등을 포함한 '끼워팔기' 마케팅으로 여러 차례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다. 1997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1998년 미국 법무부는 MS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 판 것에 대해 위법 판정을 내렸다. 당시 MS는 미국 각 주별로 합의금을 내야 했고 EU에서도 4억 9700만 유로(약 6640억 원)의 벌금을 냈다.
윈도우 3.0 버전과 3.1 버전은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연이어 등장한 윈도우95가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MS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가 되었다. 다만 OS 시장에서 독점이 심화되며 회사를 분할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빌 게이츠는 2000년 MS의 멤버이자 친구인 스토브 발머에게 대표직을 물려줬다. 2006년까지는 최고소프트웨어아키텍트를 맡았고, 2008년 MS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한 뒤 이사회에서 활동해왔다.
◆자선 사업가로 변신한 빌 게이츠
빌 게이츠는 2000년 본격적으로 자선 사업에 뛰어들었다. 빌 게이츠의 아내인 멜린다 게이츠는 50억 달러(약 6조 530억 원)를 출연해 빌앤멜린다게이츠 재단을 만들었다. 소프트웨어로 대표되던 빌 게이츠가 자선 사업에 뛰어든 건 파격적인 행보였다.
전염병에 관심이 많은 만큼, 빌 게이츠는 은퇴 후 코로나19 예방과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빌앤멜리나게이츠 재단은 지난 25일 "존슨앤존슨 등 다양한 기업과 협력해 코로나19 백신과 진단키트,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단은 해당 기업들과 이달 초 전화 회의를 갖고 구체적인 조치를 논의했다. 재단은 "앞으로 두 달 안에 생체실험을 하는 걸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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