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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다던 인간형 로봇, 사람의 생명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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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다던 인간형 로봇, 사람의 생명 구한다
[런칭스페셜] 휴머노이드 로봇, 10년 후 가치 ‘로봇 구조대원’이 온다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이 현실 속에서 뭔가 제대로 된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연구 목적은 공학분야 기초기술을 갈고 닦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몇 해 전만 해도 인간형 로봇의 ‘실용성’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가혹한 편이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러플린’ 전 KAIST 총장은 학내에서 로봇 ‘휴보(HUBO)’를 개발하는 것을 보고 “쓸모없는 일을 한다”며 혹평했다. 이견은 많았지만 이런 평가에 동의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현재. 인간형 로봇의 필요성에 대해 아직도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인간형 로봇의 실용화에 대해 긍정적인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기술개발이 더 필요하지만 특정 분야에선 인간형 로봇의 실용화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대신 복잡한 재난 현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기계장치. 이른바 ‘로봇 구조대원(Rescue)’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2013년 개발됐던 DRC 휴보 초기형. [사진=KAIST]


◆인간처럼 생긴 로봇만이 할 수 있는 일 ‘재난구조’

미국 국방성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명성을 모르는 과학기술자는 거의 없다. 이 곳은 미국의 군사연구를 이끄는 기관으로 본래 미국항공우주국(NASA)와 한 기관이었다가 갈라져 나왔다. 인터넷의 원형인 ‘알파넷(ARPANET)’ 개발을 주도한 곳이기도 하다. DARPA가 없었다면 지금의 인터넷 세상이 도래하지 않았거나 서비스 형태가 큰 폭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DARPA의 혁신전략 중 하나로 ‘챌린지’라 부르는 특별한 기술경진대회가 있다.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할 것 같은 과제를 내 걸고 ‘연구비를 충분히 주겠다. 몇월 몇일까지 이 기술을 개발해서 모여라. 실력을 겨뤄 1위를 한 팀에게는 커다란 상금을 주겠다.’고 부추기는 것이다.

현재 실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 ‘자율주행차’도 사실상 DARPA가 부추겼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04년 DARPA는 ‘미국 모하비 사막 내 험로 240km를 운전사 없이 주파하는 로봇 자동차 대회를 개최했다. ‘그랜드 챌린지’란 이름의 이 대회의 상금은 100만 달러(약 11억6100만 원). 첫 해에는 완주에 성공한 연구팀이 하나도 없었다. 

DARPA는 상금을 200만 달러로 올렸고 2005년 마침내 다섯 개 팀이 사막횡단에 성공한다. 연이어 DARPA는 ‘어반 챌린지’란 대회를 열었다. 도심 속을 교통규칙을 지켜가며 주행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이 당시 그랜드 챌린지, 어반 챌린지 등에 참여했던 연구진의 상당수가 현재 구글, 우버 등으로 진출하고 상업용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있다.

이런 DARPA가 2012~2015년 주도했던 로봇기술경진대회가 있다.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DRC, Darpa Robotics Challenge). 한국 내에선 재난로봇경진대회라고 불린 이 대회에서 한국 KAIST의 휴보 연구진이 최종 우승했다.

비록 연출된 환경이지만 가상의 원전사고 현장에 로봇이 스스로 자동차를 몰고 들어가 인간 대신 냉각수 밸브를 잠그는 등 최소한의 복구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이 대회 이후 ‘자율주행차는 실용화 길을 걷고 있으니 십수년 후면 인간형 로봇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난 현장에 투입하는 로봇을 굳이 왜 인간형으로 만들어야 할까. 재난 현장이란 사람이 살고 있는 건축물의 붕괴, 화재 발생, 방사능오염 등이 일어난 경우를 뜻한다.

인간의 주변 환경은 모두 사람에 맞춰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형 로봇이 가장 대응이 빠르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사다리를 기어 올라갈 수 있으면서 손으로 각종 기계장치를 사람 대신 조작할 수 있는 로봇은 인간형 이외에 찾기 어렵다. DRC 대회는 로봇의 형태를 규정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참가팀이 인간형 로봇을 개발해 들고나왔다.

이 대회 이후 세계 인간형 로봇 개발자들의 최종 연구방향은 다분히 ‘재난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간형 기계장치’ 개발에 맞춰졌다. 세계 최초의 인간형 로봇 ‘아시모’를 개발한 일본 혼다 자동차도 DRC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이에 자극을 받아 독자적인 재난대응 로봇 ‘E2-DR’을 공개했다.
 

[사진=Roscosmos]

러시아 연구진도 재난현장 투입 및 국제우주정거장(ISS) 비상상황에 인간 대신 우주선 조종작업을 할 수 있는 인간형 로봇 ‘스카이봇(Skybot) F-850’을 개발하고 있다. 러시아 출신 유명 격투기 선수의 이름을 따 ‘표도르’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가사로봇 등장은 아직 요원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배달로봇,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론 등 다양한 이동형 로봇이 연구 중이지만 아직도 완전히 실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도로 위를 이동하는 주행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주변 환경을 완전히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판단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로봇의 보행능력보다는, 로봇 스스로 주변상황을 완전하게 인식하고 거기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우선적으로 개발돼야 한다. 사람이 물 한 잔을 유리컵에 담아 마음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건, 만약 그 컵을 바닥에 떨어뜨려 깨버리는 실수를 한다고 해도, 스스로 뒷수습을 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봇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런 사고에 대응하는 훈련까지 시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격도 문제다. 한국형 재난구조 로봇 ‘DRC휴보’의 가격은 대당 수억 원, 미국의 고성능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의 경우 수십억 원에 달한다. 어쩔 수 없이 사람 대신 로봇을 투입해야 하는 방사능 오염 현장,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불합리한 일을 대신할 수 있는 화재현장 등은 공익을 목적으로 가격과 관계없이 고가의 로봇을 투입할 여지가 생긴다.

로봇 전문가들은 영화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사노동을 대신할 인간형 ‘집사로봇’의 등장은 완전한 인공지능 개발에 달려있다고 보고 있다. 그 이전에는 제한적인 환경에 선택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맞춤형 인간형 로봇’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재난현장은 그 최종 목적지인 셈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조정산 유압로봇팀장은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서 로봇기술도 크게 진보하고 있어 실용화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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