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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저커버그의 잃어버린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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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저커버그의 잃어버린 다이어리
페이스북 초창기부터 '세계정복계획' 세워

인터뷰어 스티븐 레비가 마크 저커버그를 만난 건 2006년 3월.

저커버그는 하버드대학에 지난 2002년 입학했다. 하지만 수업에는 관심이 없었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러던 중 학생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소프트웨어 ‘페이스매시’를 개발했다. 그는 얼굴 사진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고자 여러 대학교 기숙사 웹사이트를 해킹하기도 했다. 이 일이 발각되자 대학행정위원회는 저커버그에 대한 조사에 나섰고 그는 정학을 받을 뻔했다.

저커버그는 2004년 2월 페이스북을 공동 설립했다. 자금을 조달하거나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으나, 사업 기반은 차곡차곡 마련됐다. 저커버그는 2005년 말 자금조달에 성공했다.

페이스북 사업 초기 시절, 저커버그가 살던 아파트에 가면 메모가 빽빽이 적힌 일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일기에 향후 비전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훗날 저커버그는 일기 대부분을 직접 없애버렸다. 그는 없애고자 했던 메모 중 핵심적인 17장을 ‘변화를 위한 책’이라고 불렀다.

‘변화를 위한 책’은 고등학생, 대학생용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인 페이스북을 더 넓은 범주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의 윤곽을 드러냈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결국 폐쇄형에서 개방형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변하길 원했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초창기부터 손으로 쓴 일기를 통해 세계 정복 계획을 세우곤 했다. 이를 없앴다고 생각했으나 다이어리 몇 장은 보존됐다.
[사진=SAMUEL CORUM/GETTY IMAGES]


페이스북의 영역 확장과 프라이버시 유지라는 두 가치의 불협화음은 저커버그의 뇌리를 사로잡아서 그는 기존과 다른 내용을 일기에 적었다. 그는 ‘다크 프로파일’이라는 내용을 3 페이지에 작성했다. '변화를 위한 책'에는 그가 ‘피드’라고 불렀던 기능도 포함됐다.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건 미래형 정부 인터페이스를 사용해 연결된 모든 사람의 데이터에 접속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줘야 했다. 페이스북의 미래를 설계하는 건 저커버그에게 즐거운 일이었다.

야후는 2006년 저커버그에게 페이스북을 1억 달러에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그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저커버그는 지속적인 성장을 원했다. 저커버그는 2008년 셰릴 샌드버그를 최고운영책임자로 고용했다. 그러나 저커버그가 여전히 최종 의사결정권자였다.

저커버그는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까지만 해도 도덕적으로 큰 결함이 없어 보였다. 페이스북 대표는 2016년 여름 나이지리아에서 와이파이 서비스를 판매하고 주요 도로에서 달리기를 하면서 `국민 영웅으로 추대됐다.

2019년 7월 4일, 마크 저커버그 집에서 그를 만났다. 소파에 앉아 있는 저커버그는 13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판이하게 달라졌다. 그는 대통령, 독재자와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국회의원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저커버그는 수십 억 달러의 자산가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는 아내가 이끄는 기업에 자금을 조달했다. 이 기업은 2100년까지 모든 질병을 치유한다는 목표를 바탕에 두고 설립됐다. 저커버그의 기업은 전례 없는 성과를 냈다. 거의 전인류의 1/3이 저커버그가 만든 SNS를 사용한다. 이제 그는 SNS가 야기한 부정적 요소를 완화하고자 노력 중이다.
 

** 더 자세한 인터뷰 원문은 아래 와이어드US 링크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Inside Mark Zuckerberg's Lost Notebook

와이어드 코리아=문재호 기자 jmoon@wir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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