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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가 기업문화를 망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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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가 기업문화를 망치고 있다
왜 모든 장소에 테이블 축구대가 있어야 하는가?

/ By Arielle Pardes, WIRED US

아침 9시를 조금 넘긴 시간, 사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회사에 올 때 타고 온 회사 버스는 쿠션이 있는 좌석과 와이파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외양이 특징이다. 수요일이지만 주말에 입는 것처럼 캐주얼한 옷을 입고 회사에 왔다. 사무실 부엌에는 녹색 주스와 재배된 콤부차들이 늘어서 있으며, 아침과 점심은 무료로 제공된다. 사무실에는 원격으로 일하는 동료들이 불쑥 나타나 말을 걸 수 있도록 스크린이 놓여져 있다. 회사 대표가 당신 옆을 지나간다. 얼마 뒤, 자리에 도착했다. 노트북을 내려놓고, 헤드폰을 쓰고, 앞으로 12시간 일에 집중하기 위해 EDM을 틀었다. 근처에는 아무도 없다. 

2009년 실리콘밸리 이야기처럼 들리는가? 2020년 미국 경제 기업들 이야기다. 점점 더 많은 기업이 실리콘밸리에서 만들어낸 기업문화를 채택하고 있다. 오늘날 사무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근무하던 예스러운 공간이 아니다. 오늘날 기업에는 구석진 공간이 없다. 모두가 쓸 수 있는 '공용 책상'과 대초원처럼 넓고 탁 트인 공간만 있을 뿐이다.

이전날 사무실은 끔찍하면서도 분명한 목적이 있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당신은 주말에 파티션으로 가로막힌 네모난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혼자 주말을 보내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구글 등 기업이 극한의 경쟁 문화로 여겨졌던 기업 문화를 바꾸기 시작했다. 오늘날, 직장 동료는 마치 가족처럼 느껴진다. 위계질서도 사라졌다. 직함은 '마법사'나 '닌자'와 같은 것으로 대체됐다. 휴가는 무제한이다. 어떻게 워크 라이프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잊어도 좋다. 일은 이제 삶이 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사무실은 휴식 공간과 낮잠시간, 7시 이후 저녁식사를 지원하겠는가? 
 

[사진=UNSPLASH]

이런 아이디어는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고된 일로부터 해방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IT 종사자 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해 기존 기업 문화를 파괴했다. (WIRED는 파티션을 없앴고 사무실에 강아지를 데려올 수 있는 규정을 시행 중이다. 기업 주방장이 있지만 음식 값은 지불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문화는 이제 널리 퍼지는 추세다. 미국 미시간주의 모기지 회사인 유나이티드 쇼어는 사무실 내에 퍼즐이 가득한 방탈출 공간을 만들었다. 직원들은 팀워크를 위해 언제든 운동할 준비가 돼 있다. 뉴저지 소재의 데이터 관리 회사인 컴볼트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핑퐁게임, 테이블축구, 당구를 즐길 수 있다. 3층과 4층 사이에는 미끄럼틀도 있다. 그 어떤 오래된 회사에서도 오하이오에 본사를 둔 의료 회사 커버마이미즈가 제공하는 명상 공간이나 당직 마사지사, 주방장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휴가일이나 휴일 전후로 직원들이 선호할만한 정책도 있다. 보험회사인 네이션와이드는 직원들에게 한 달에 두 번 휴가를 낼 수 있도록 독려한다. 단지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콜럼버스 비즈니스 퍼스트의 최고 행정 책임자인 게일 킹은 "우리는 직원들에게 이런 특전을 제공해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래된 기업들도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규칙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농산물 유통업체인 카길은 최근 개방형으로 사무실을 재설계하고 보다 자유로운 원격근무 정책을 채택했다. 카길의 최고투자책임자(CIO) 저스틴 커쇼는 "지난달에만 3400만 분의 화상통화를 했다"고 말했다. 카길은 설립된 지 155년 된 회사지만 최근 IT회사를 본떠 기업문화를 재설계함으로써 실리콘밸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현대화되기 시작했다. 커쇼는 "혁신 분야 창업자와 투자자들을 만나기 위해 전체 집행팀이 실리콘밸리를 답사했다"며 "우리는 확실한 아이디어를 갖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웰스 파고, NBA와 함께 일해온 마이크 로빈스 전무는 모든 사람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따라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로빈스는 "전통적인 기업들은 실리콘밸리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구글이 뭘 하는거지? 실리콘밸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라고 말한다"며 "그들은 모든 성공을 본다"고 말했다.

캐주얼한 복장, 사무실에서 제공되는 무료 식사, 원격 근무 추세까지 모든 것이 실리콘밸리에서 추진됐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의 최대 수출품은 일과 삶의 장벽이 무너지는 거라는 게 로빈스의 생각이다. 로빈스는 최근 저서인 '자아를 전부 일터로 데려와라'는 직원들이 동료들과 함께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만한 공간인, 새로운 형태의 일터를 옹호한다.(콤부차는 필요하지 않다.) 물론 어두운 면도 있다.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지면, 모든 사람이 항상 일하게 된다.

넷플릭스는 무제한 휴가일을 대중화했다. 이런 정책들조차 더 느긋하고, 햇볕 아래에서 쉴 수 있는 노동환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세이지 비즈니스 연구원이 지난 2017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무제한 휴가와 같은 정책 아래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통상적으로 더 적은 휴가를 가졌다. 기업 정책의 좋은 점은 곧 비슷한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무료로 제공되는 저녁은 직원들이 사무실에 더 오래 남아있도록 장려한다. 수면공간은 직원들에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건 당신이 회사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창업을 위해 편집국을 떠난 전직 기자 댄 라이언스는 24시간 내내 근무하는 문화에 대해 누구보다도 목소리를 높인다. 라이언스는 24시간 근무하는 문화가 싫어 IT업계를 떠났다. 이후 그는 '실리콘밸리'라는 TV 시리즈를 제작하며 직업 문화의 부조리를 비판했다. 실리콘밸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글은 너무나 사실적인 초상화처럼 느껴진다. 라이언스는 IT업계의 기업문화를 자주 비꼰다. 2018년에는 '랩 랫츠'라는 책을 통해 실리콘밸리의 기괴한 기업 워크숍과 문화를 지적했다. 의무적으로 레고를 가지고 놀아야 하고, 기업 문화에 집착하며, '졸업'이라고 불리는 실질적인 해고에 대해서 말이다. 

라이언스는 이런 기업문화가 무료 스낵, 수돗물처럼 나오는 맥주처럼 특권과 함께 핵심부터 썩었다고 믿는다. 그는 근로자들의 불행은 실리콘밸리의 기업문화뿐만 아니라 '주식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사업모델에 기인한다고 비난한다. 오늘날 IT회사는 투자자들의 이익을 위해 성장에 집착하고 있다. 그 가운데 직원들의 희생이 있다. 운이 좋은 직원들은 스톡옵션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스톡옵션을 갖고 있지 않다. 심지어 직원들이 갖고 있는 스톡옵션은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돈보다 적은 비율이다. 특혜처럼 느껴지는 기업문화는 '직원들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고 직원들이 그들의 주머니가 뽑히는 걸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방법'과 같은 기능을 한다. '루비 온 레일스'의 프로그래밍 언어 '루비'를 만든 데이비드 하인마이너 한슨은 이것을 '낙수된 워커홀리즘'이라고 부른다. 한슨은 "일생의 노력을 벤처 펀드의 연대표로 압축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가장 최악인 것은, IT업계가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일 중독을 바람직한 것으로 포장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일에 중독된 '허슬 문화'는 9시부터 5시까지의 근무시간을 '996'으로 바꿨다. 996이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주일에 6일 근무하는 것이다. 엘론 머스크는 "아무도 일주일에 40시간씩 일해 세상을 바꾸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리는 꼬여있는 노동 문화를 풀어낼 수 있을까? 아마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달 동안 실리콘 밸리는 다시 일과 삶의 경계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혹은 최소한 규범이 불합리하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다. 버지가 벤처 지원금 1억 달러 이상을 투자한 여행가방기업 어웨이는 근무환경 조사 이후 회사 대표가 사임하기도 했다. 어웨이의 많은 직원들은 대표로부터 모욕적인 메시지를 받았고, 휴가 내내 일하라는 요청을 들었으며, 대표가 왕따 문화를 조장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의 다른 직원들도 공감한다. 람다스쿨 대표 오스틴 알레드는 트위터를 통해 "사실상 모든 기업의 99%가 겪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정도면 1950년대 기업문화가 다시 돌아왔으면하는 바람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반세기 전 직장문화가 완벽했던 건 아니다. 론 프리드먼은 2014년 책 '가장 일하기 좋은 곳: 특별한 작업장을 만드는 예술과 과학'을 통해 절충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리드먼은 "파티션이 있는 사무실은 우울하다. 개인 사무실은 고립돼 있다. 탁 트인 공간은 산만하다. 그러나 아마도 이제는 사무실이 단지 사무실이었던 세상, 일하고 떠날 수 있었던 공간을 그려볼 때"라고 말했다. 

** 위 기사는 와이어드US(WIRED.com)에 게재된 것을 와이어드코리아(WIRED.kr)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서정윤 에디터)

<기사 원문> Silicon Valley Ruined Work Culture

와이어드 코리아=Wired Staff Reporter wiredkorea@wir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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