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과학과 빅데이터에 기반해 인간의 문화·예술 창작물의 혁신성과 영향력을 계산하는 '이론물리학 알고리즘'이 개발됐다.
박주용 KAIST 문화예술대학원 교수팀은 4일 인간의 창의성을 계산할 수 있는 새 이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예술 작품의 빅데이터로부터 창의성을 직접 계산함으로써 빠르게 증가하는 창작 콘텐츠의 우수성을 효율적으로 판단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이 알고리즘을 통해 클래식 음악가 창작물의 창의성, 혁신성을 계산함으로써 음악의 발전에 베토벤이 끼친 영향력을 수치로 규명하고, 후기 낭만파 시대의 거장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한 대표적 예술가임을 밝혀냈다.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알려진 문화예술 창작에서도 인공지능 등의 컴퓨터 알고리즘이 널리 활용되며 예술 작품의 창의성을 과학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문화예술은 수치적인 평가가 어려워 인공지능을 한 단계 발전시킨 '인공창의성' 연구에 큰 장벽이 되어왔다. 개별 창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적 반응을 측정하는 시도는 종종 있었지만 대규모의 객관적 실험을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위와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창작품 자체를 빅데이터화한 뒤 그로부터 창의성을 평가하는 과학적 방법론 개발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연구팀은 1700~1900년 사이에 작곡된 서양 피아노 악보로부터 동시에 연주되는 음정으로 만들어진 '코드워드(codeword)'를 추출하고 이론물리학의 한 분야인 네트워크 과학을 적용했다.
작품 사이의 유사도를 측정해 서로 얼마나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나타내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각 작품이 혁신적인지, 또한 후대의 작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통해 창의성을 평가했다.
연구팀은 현대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핵심적 음악 스타일이 확립된 200년에 걸쳐 음악 창작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이해했다.
이 연구에서는 바로크⋅고전기(1710~1800년)의 대표 작곡가인 헨델과 하이든, 모차르트를 거쳐 고전-낭만 전환기(1800~1820년) 이후 베토벤이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작곡자로 떠오르고, 베토벤의 영향을 받아 리스트와 쇼팽 등 낭만기(1820~1910년)의 거장이 등장하는 과정을 규명했다. 올해로 탄생 250주년을 맞은 베토벤은 사후에도 100년 가까이 최고의 영향력을 유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연구팀은 후기 낭만파의 거장인 라흐마니노프가 과거의 관습은 물론 자신의 작품으로부터 차별화를 끊임없이 시도한 최고의 혁신적 작곡가였음을 밝혀냈다.
코드워드에 기반한 네트워크로부터 음악의 창의성을 계산하는 이 알고리즘은 낱말, 문장, 색상, 무늬 등으로 만들어진 문학 작품이나 그림, 건축, 디자인 등의 시각 예술의 창의성 연구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는 "이번 연구 성과는 문화예술 창작물의 과학적 연구에 장벽이 되어온 창의성 평가라는 난제를 네트워크 과학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해결할 수 있음을 보인 것"이라며 "단순 계산력만을 따라 하는 인공지능의 한계를 극복한 인공창의성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스프링어-네이처 그룹의 데이터 과학 전문 학술지 'EPJ 데이터 사이언스' 1월 30일 자 온라인판에 개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