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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장래 희망은 ‘인플루언서’, 나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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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장래 희망은 ‘인플루언서’, 나쁜 일일까?
와이어드 정신 조언 전문 칼럼니스트가 온라인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6살짜리 자녀의 야망에 불안감을 느낀 부모에게 조언을 건넸다.
By MEGHAN O'GIEBLYN, WIRED US

“현재 6살인 딸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볼 때마다 항상 ‘인플루언서’라고 답한다. 어린 딸이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것이 걱정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온라인 영향력을 우려하는 사연자가

사연자에게
사연자의 질문을 보고 페디 체이예프스키(Paddy Chayefsky) 작가의 1976년도 작품인 ‘네트워크(Network)’에서 배우 페이 더너웨이(Faye Dunaway)가 연기한 주인공 다이애나 크리스텐센(Diana Christensen)이 생각났다. 극 중 크리스텐센은 TV를 보면서 자란 뒤 윤리성이 없는 세대를 상징하는 젊은 네트워크 뉴스 기관 운영자였다. (극 중 어느 한 등장인물은 크리스텐센을 ‘인간의 모습을 한 TV’라고 칭했다.) 크리스텐센은 카리스마가 넘치면서 능력이 뛰어나면서도 매우 비윤리적이고, 잔혹할 정도로 경쟁에 뛰어들면서 스스로 만족하는 것으로 유명한 평점에 집착하는 동시에 시청률을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인물이다. 크리스텐센은 TV가 망친 영향력을 향한 문화적 우려가 만연한 당시 현실에 분노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동시에 작품 속 크리스텐센을 윤리와 고압적 태도와 관련하여 묘사한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잡지 뉴요커 파울라인 카엘(Pauline Kael) 기자는 네트워크 리뷰 기사를 통해 “체이예프스키 작가가 실제로 불만을 제기한 부분은 술자리에서나 철학적 논쟁을 즐기는 이들이 항상 가짜 사원의 영혼이 없는 신도와 같은 존재인 젊은 세대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다는 점이었다”라고 전했다.
 
[사진=Freepik]
[사진=Freepik]

네트워크라는 영화를 언급한 이유는 사연자가 우려하는 바를 반대한다는 사실을 가장 확실히 설명할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연자는 이미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를 우려하는 모든 세대가 젊은 세대의 타락 원흉인 가짜 사원과 같은 대상으로 생각한다고 확신한다. 또,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와 함께 자라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불확실한 근시안적인 우려이자 새로운 미디어에 반대하는 것이면서 그동안 발견하지 않은 수많은 절망을 뒤늦게 깨닫게 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다이애나 크리스텐센 이전에는 1955년 출간된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 작가의 소설 『디어파크(The Deer Park)』 속 스튜디오를 우려하는 이들이 할리우드의 저속한 윤리적 기준을 묘사했다. 또, 하워드 혹스(Howard Hawks Howard Hawks) 감독의 1940년 작품 ‘연인프라이데이(His Girl Friday)’의 무자비한 언론인이 비인간적인 인물로 등장했다. 그보다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고자 한다면, 오늘날 독자 다수가 어리둥절함을 느끼는 제인 오스틴 작가의 1814년 출간 소설 『맨스필드파크(Mansfield Park)』 속 주인공을 살펴볼 수 있다. 『맨스필드파크(Mansfield Park)』의 절정에서는 귀가 후 자녀가 연극에 빠져 분노한 아버지의 모습이 등장한다.

사연자가 우려하는 바를 역사적 현실주의의 매력을 통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의도는 없다. 과거의 문제가 타당함을 입증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어찌 되었든 인간성은 계속 악화되고, 새로운 기술 수단과 새로운 기술이 낳는 직업은 가장 최근 등장한 새로운 미디어와 직종보다 더 영혼이 없다는 점에서 딸의 장래 희망을 걱정할 수도 있다. 미국과 영국 아동 30%의 장래 희망이 유튜버라는 2019년도 여론 조사 결과를 인용한 다수 언론인은 종종 우주비행사를 장래 희망으로 답한 아동(11%) 비율이 적다는 점을 함께 제시한다. 그리고 사회 전체적으로 우주 탐험이라는 야망은 줄어들고, 더 낮은 목표와 함께 유명인이 되고자 하는 아동이 증가하는 추세인 것처럼 강조한다.

사연자가 딸의 장래 희망을 반대하는 이유는 인플루언서라는 직업이 “누구나 유명인이 될 수 있다”라는 과시된 매력 때문에 경쟁이라는 수직적 위계를 숨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예상한다. 또, 인플루언서라는 직업이 수직적 위계질서를 가리면서 발생하는 문제가 불안정하면서 주로 가장 유명한 소수에게만 집중하는 점, 브랜드의 흥미롭지 않은 마스코트가 되어야 한다는 점, 지역사회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지 못하는 점, 개인과 전문직 역할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점, 콘텐츠의 ‘좋아요’, ‘공유’, ‘팔로워’ 수 등을 기준으로 불특정 다수를 즐겁게 하느라 분주해야 한다는 점과 독립적 사고 능력을 해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순응 등도 딸의 인플루언서라는 장래 희망을 걱정하는 이유라고 추측한다.

딸의 장래 희망을 걱정하는 이면에는 인플루언서라는 개념 자체와 관련된 타당한 듯한 반대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육아는 영향력의 확장된 경험이다. 사연자는 자신의 가치관과 정치, 도덕, 윤리적 인식을 자녀에게 주입하고자 하지만, 자녀는 여전히 스스로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영향력이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걱정하게 되었을 것이다. 인플루엔자라는 기본적인 단어를 공유한 코로나19 대유행병 시대에 널리 주목받은 ‘영향력’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병원체가 아무 제약 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당사자 동의 없이 질병 감염 원인을 일으킨다는 개념을 반영한다. 많은 부모가 자녀의 기술 사용을 가정 내 도덕 교육을 의도적으로 강화하여 피해야 하는 다양한 전염병 숙주와 같이 생각한다. 사연자는 딸이 디지털 플랫폼에 어느 정도 깊이 빠졌는지 파악하는 것이 딸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예방하지 못한다고 느낄 것이다.

혹은 그보다 더 심각한 수준으로 딸의 장래 희망을 탐탁치 않게 여길 것이다. 사연자의 문제를 부인한다면, 사연자가 본능적으로 딸의 장래 희망을 거부하면서 사연자의 가치관 출처와 유효함을 두고 더 깊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진지하게 생각하려 한다면, 사연자는 자신이 성장한 세대에 형성된 신념이 무정형의 검증되지 않은 추측임을 깨닫게 될 수밖에 없다. 현재 딸이 틱톡, 유튜브 인플루언서를 우상화한다면, 사연자가 성장기에 가수나 영화배우, 소설가 등 여러 아티스트를 우상으로 여긴 것보다 더 근시안적이면서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을 지닌 채로 성장할 우려가 더 클까? 그 답은 아직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꾸준히 정직하게 답을 찾고자 노력한다면, 사연자는 고립된 채로 도덕적 가치관을 추구하는 인물이 아니라 과거 수십 년 동안 지닌 선입견과 맹점의 문제를 막지 못한 채로 자란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연자의 선입견을 깨닫는다면, 운명론에 영감을 불어넣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사연자의 우려를 더 포괄적인 범위에서 의미있는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연자의 부모 세대가 사연자의 세대를 보고 우려한 바도 일깨워주고자 한다. 과거에는 TV, 영화, 신문, 극장 등이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이를 이해한다면, 현재 사연자 스스로 우려하는 바를 세대 변화의 일부분이자 모든 세대가 거쳐야 할 통과 의례와 같은 일임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Phaedrus)’를 믿는다면, 소크라테스도 파이드로스와 같은 작품의 인기에 분노할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기억력을 향상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이드로스’와 같은 작품으로 학습하는 일에 분노할 것이다.) 과거의 문제도 살펴본다면, 부모인 사연자는 주어진 경제 상황의 특성을 초월한 교훈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성장기에 서서히 이해하게 된 모든 일시적으로 이어진 추측 사항과 함께 미래 세대에게도 진실과 가치 있는 상태로 남을 오랜 지혜가 존재할 것이다. 사연자가 딸에게 오래 남는 진실을 물려주고, 사연자의 딸이 미래에 택하는 직업을 떠나 영향력을 지니도록 갖추도록 진실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클라우드 드림

** 위 기사는 와이어드US(WIRED.com)에 게재된 것을 와이어드코리아(WIRED.kr)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고다솔 에디터)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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