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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탐사보도 매체 ‘벨링캣’, 러시아의 비밀 암살 조직 네트워크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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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탐사보도 매체 ‘벨링캣’, 러시아의 비밀 암살 조직 네트워크 발견
러시아가 세르게이 스크리팔부터 알렉세이 나발니까지 여러 반정부 인사의 입막음을 시도한 사실이 포렌식으로 드러났다. 여러 사실이 폭로된 상황의 중심에는 탐사보도 매체 벨링캣이 있었다.
By ELIOT HIGGINS, WIRED UK

2018년 9월 13일, 필자는 영국 탐사보도 매체 벨링캣(Bellingcat) 동료와 함께 슬랙(Slack)을 통해 벨링캣에서 가장 보기 드물면서도 기이한 탐사의 시발점이 될 인터뷰를 시청했다. 솔즈베리에서 발생한 전직 러시아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Sergei Skripal)에게 독극물을 투약한 사건과 관련해 두 가지 핵심 의문 사항을 확인했다. 바로 그 후, 영국 당국은 용의자로 지목된 러시아인 두 명이 러시아 방송사 RT에 등장해, 최고 편집장 마르가리타 시모니안(Margarita Simonyan)과 전 세계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RT 단독 인터뷰와 후속 탐사 보도 모두 솔즈베리 독극물 사건의 용의자와 관련된 부분이 러시아 야권 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Alexei Navalny) 독극물 투약 사건의 해결 실마리가 되었다.

알렉산더 페트로프(Alexander Petrov)라는 이름과 루슬란 보쉬로프(Ruslan Boshirov)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솔즈베리 사건 용의자 두 명이 시모니안에게 사건을 이야기했다. 용의자 두 명 모두 123m의 첨탑으로 유명한 성당을 보러 솔즈베리에 방문한 무고한 운동용 영양제 판매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벨링캣의 슬랙 모임 분위기는 냉소적이었다. 필자가 2014년에 창간한 벨링캣은 온라인 오픈소스 조사를 이용해, 우크라이나 동부의 말레이시아 항공기 17 추락 사고부터 시리아 전쟁 범죄까지 다양한 사건을 탐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솔즈베리 사건 용의자 두 명이 RT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주장한 내용은 러시아 당국과 당국의 대리 언론 기관이 유포한 거짓이자 선동 광고, 가짜 뉴스임이 밝혀졌다. 러시아 당국과 그 언론 기관은 벨링캣 취재팀이 러시아의 의문스러운 암살과 같은 주제를 자주 조사한 만큼 필자와 벨링캣을 겨냥했으며, RT 단독 인터뷰도 거짓 선동 광고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솔즈베리 사건 이외에도 벨링캣 취재팀의 의구심을 자아낸 말도 안 되는 보도 내용이 많았다. 그러나 벨링캣 취재팀은 이미 RT 단독 인터뷰에 등장한 용의자 두 명의 배경을 조사했다. 용의자 두 명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상황에서도 벨링캣 취재팀은 용의자 두 명이 실제 러시아 정보기관 소속 요원이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문건을 입수했다.

용의자 두 명이 영국 입출국 당시 탑승한 항공편과 암살 시도가 발생한 시간과 함께 영국 당국이 발표한 상세 정보 덕분에 벨링캣 취재팀은 용의자의 신원을 더 깊이 조사할 수 있었다. RT 단독 인터뷰가 보도된 다음 날, 벨링캣은 각종 특이한 자료 출처를 이용해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첫 번째 탐사 내용을 보도했다. 과거, 벨링캣은 대다수 탐사 보도에서 SNS 게시글부터 구글 어스(Google Earth)와 같은 서비스에서 찾을 수 있는 위성 이미지 등 인터넷에서 누구나 무료로 찾을 수 있는 정보인 온라인 오픈 소스 증거를 단독으로 이용했다.

벨링캣은 영국 당국이 이름을 공개하기 전까지 용의자 알렉산더 페트로프와 루슬란 보쉬로프를 추적할 수 있는 자료를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또, 용의자가 근무했다고 주장하는 운동용 영양제 기업 관련 정보와 SNS 활동, 신문 기사, 심지어 친구나 가족이 용의자를 태그한 사진조차 찾지 못했다. 말 그대로 디지털 유령과 같은 존재였다.

RT 단독 인터뷰에 앞서 러시아 뉴스 사이트 폰탄카(Fontanka)가 용의자의 유출된 여권 데이터를 보았을 때, 여권 번호 중 세 자리만 다르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는 운동용 영양제 판매원 두 명에게 우연히라도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일이다. 어딘가 의심스러운 용의자의 여권 번호와 온라인 공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존재 모두 페트로프와 보쉬로프 모두 단순히 해외의 유명한 성당을 관광하던 평범한 판매 사원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벨링캣 취재팀은 두 용의자와 관련된 오픈소스 정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해, 러시아의 활성화된 데이터 암거래 시장이라는 ‘극단적인 방식’ 사용을 논의했다. 시민과 들끓는 부정부패 관련 데이터 수집에 매우 적극적인 러시아는 의도치 않게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사회가 되었다. 온라인 데이터 브로커를 통해 구매할 수 있는 상세한 휴대폰 연락처부터 여권 등록 서류 등 각종 데이터 덕분이었다. 불분명한 다크 웹사이트를 찾기 위한 사이버 전문가가 아닌 러시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유롭게 판매되는 데이터였다. 온라인 데이터 브로커를 통해 입수한 데이터와 함께 유출된 다량의 러시아인 데이터베이스를 온라인 소스와 오프라인 소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출된 데이터에는 차량 등록 정보부터 주택 등록 정보, 항공편 탑승 기록 등 다양한 정보가 포함돼 있다.

벨링캣 수석 탐사 취재원인 크리스토 그로제브(Christo Grozev)는 지난 몇 년간 유출된 데이터베이스를 다량 수집했다. 이때 입수한 데이터베이스에 용의자인 알렉산더 페트로프와 루슬란 보쉬로프의 정보가 등장했다. 벨링캣은 온라인 브로커를 통해 이상한 점이 여럿 드러난 용의자의 여권 등록 문서를 입수했다. 용의자의 여권 등록 문서에는 ‘정보 제공 금지’라고 적힌 도장이 찍혀 있었다. 또, ‘작전 구역: 러시아 연방 국방부’라고 적힌 도장과 함께 연락처도 적혀 있었다.

이 외에도 똑같이 이상한 점이 나타난 알렉산더 페트로프와 루슬란 보쉬로프의 여권 번호를 확인하기 위해 여권 등록 문서를 면밀히 검토했다. 여권은 일괄적으로 발행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정보가 이처럼 이상한 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탐사의 시작에 불과하다. 2018년 10월, RT 단독 보도가 방송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을 때, 알렉산더 페트로프와 루슬란 보쉬로프의 진짜 정체는 러시아 비밀 요원인 알렉산더 예게니예비치 미쉬킨(Alexander Yevgeniyevich Mishkin)과 러시아 대령 아나토리 체피가(Anatoliy Chepiga)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모두 러시아 군사 정보국 GRU에서 근무한 이들이었다. 러시아에서 유출된 다량의 정보 덕분에 용의자 두 명의 진짜 정체를 찾아낼 수 있었다. 또, 두 용의자 모두 러시아의 최고 명예 훈장이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전달하는 러시아 영웅상(Hero of Russia award)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벨링캣 취재팀은 휴대 전화 기록을 조사하면서 세르게이 스크리팔 암살 음모에 가담한 또 다른 용의자인 데니스 세르기프(Denis Sergeev)도 찾아냈다. 세르기프는 암살 시도가 발생했던 때와 비슷한 시기에 런던에 방문한 적이 있는 GRU 고위급 관료이다. 벨링캣 취재팀은 세르기프의 여행 기록부터 개인 휴대 전화 상세 기록까지 조사하면서 세르기프의 암살 가담 사실을 확인했다. 게다가 벨링캣 취재팀은 세르게이 스크리팔 암살 사건이 발생하기 전, 세르기프가 또 다른 GRU 조직과 함께 불가리아에서 신경 작용제를 이용해 발생한 암살 음모에도 가담한 사실을 확인했다.

벨링캣 취재팀이 계속 조사한 결과, 세르게이 암살 사건과 불가리아 암살 사건 이외에 더 많은 사건도 자세히 알아냈다. 게다가 암살 시도에서 사용한 신경 작용제의 공급처도 알아냈다. 2020년 말, 휴대전화 기록과 여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신경 작용제가 모든 암살 공격에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다. 러시아가 화학무기금지조약에 가입했을 당시 중단된 것으로 추정됐던 노비촉(Novichok) 프로그램이 실제 여러 지역으로 옮겨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또, 기존의 노비촉 프로그램에 참여한 구성원 모두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새로운 지역으로 함께 옮겨갔다. 노비촉 프로그램이 시행된 새로운 지역 중 한 곳은 운동용 영양제 판매 기업이라고 대외적으로 주장했지만, 실제 내부에는 신경 작용제 개발 및 유통 전문가가 있었다. 미쉬킨과 체피가가 RT 단독 인터뷰에서 판매한다고 주장한 운동용 영양제가 사실 신경 작용제임이 유력하다.

2년간의 탐사 보도 이후, 벨링캣 취재팀은 러시아의 신경 작용제 기반 암살 사건을 더 폭로할 가능성을 끝냈다고 생각했다. 2020년 8월에 발생한 알렉세이 나발니 독극물 사건을 계기로 벨링캣 취재팀은 GRU 이외에 다른 기관도 러시아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신경 작용제를 암살에 사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벨링캣 취재팀은 솔즈베리 암살 사건 탐사 보도 당시와 같은 방법과 자료 출처로 러시아연방보안국(FSB) 소속 정보 작전 집단도 2017년부터 30회 넘게 이동하면서 나발니를 쫓아다닌 사실을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나발니는 한 차례 노비촉에 노출돼, 혼수상태에 빠졌다. FSB 소속 집단은 솔즈베리 암살 사건을 일으킨 GRU 소속 집단과 같은 신경 작용제 연구소를 방문했다. 그리고, 벨링캣은 러시아 정보기관이 해외뿐만 아니라 러시아 내 야권 인사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과 1주일 후, 나발니는 자신을 암살하려던 조직 소속 요원 중 한 명과 주고받은 장시간의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나발니는 러시아 정부 고위급 관료의 보좌관인 척하면서 FSB 요원의 자백을 받아내려 했다. 그리고, 나발니의 속옷에 노비촉을 투약한 정확한 위치와 같은 세부 사항을 밝히도록 하고자 했다.

그 후, 나발니는 러시아로 귀국해, 즉시 체포되었다. 여러 시위가 이어졌으며, 벨링캣의 러시아의 비밀스러운 신경 작용제 암살 프로그램 조사도 계속 진행됐다. 벨링캣 취재팀은 나발니 암살 음모에 가담한 FSB 요원이 나발니의 뒤를 쫓는 것보다 더 심한 일을 한 것을 발견했다. FSB 요원의 이동 경로가 러시아인 3명의 의문스러운 사망과 겹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앞으로 FSB 암살 전담팀의 암살 사건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리라 확신한다.

** 위 기사는 와이어드UK(WIRED.co.uk)에 게재된 것을 와이어드코리아(WIRED.kr)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고다솔 에디터)

<기사원문>
How Bellingcat uncovered Russia’s secret network of assass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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