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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10년, 인터넷에 대한 두가지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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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10년, 인터넷에 대한 두가지 신화
기술의 정치적 힘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 2010년대, 끝은 다른 것으로 나다

/ By SIVA VAIDHYANATHAN, WIRED US

2010년 1월 21일, 힐러리 로댐 클린턴 국무장관은 워싱턴 DC의 뉴지엄(Newseum, 세계 최대 규모의 언론 박물관)에서 군중들에게 연설했다. 그는 ‘인터넷 자유’의 힘과 중요성을 공표하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헌혈 캠페인, 시위를 계획하고 심지어 민주주의를 위한 대규모 시위에 동원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글로벌 네트워크와 연결되었다는 말은 현대사회로 진입했다는 말과 같다"고 그는 선언했고 미국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하나의 인터넷, 하나의 지구촌, 그리고 공통지식체계를 가진 지구"라는 표어를 홍보하기 위해 제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클린턴의 연설은 인터넷은 어두운 도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인터넷의 힘은 사악한 목적을 가진 일당들에 의해 해킹되어 증오를 발산하거나 이견을 가진 사람들을 진압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

힐러리 연설의 요지는 기술 근본주의에 대한 분명한 신념에 근거했다: 디지털 기술은 필연적으로 결사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지향하며 플랫폼 뒤에 있는 미국 기업들은 미국의 가치를 대변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확산하고 국경들은 개방될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의 문 또한 열릴 것이다.

정말 좋지 않았나? 10년 후, 힐러리 클린턴은 개인 시민으로 돌아왔고 그의 대통령 출마 도전은 미국 내 이주민으로부터 미국 태생 주민 보호 정책, 보호주의, 인종차별 의제에 대한 열정을 풀어놓는 창구로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이용했던 정치 아마추어 도널드 트럼프에 의해 좌절됐다. 아, 그리고 뉴지움 또한 간판을 내릴 예정이다. 지난 2010년 클린턴은 이 기관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자유의 기념비"라고 불렀다. 이제 그 언급 역시 지나간 낙관주의의 유물로 보인다.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은 지구상에서 민주주의와 삶의 질을 향상할 것이라는 인터넷의 가능성에 대한 천진난만함이 정점을 찍으면서 시작되었다. 2019년 말에 이르러 솔직히 말해 여전히 그런 기대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처음에는 클린턴의 낙관적인 입장이 예견됐다는 징후들이 있었다. 그의 인터넷 자유에 관한 연설은 2011년 튀니지와 이집트의 봉기가 일어나기 정확히 1년을 앞두고 이루어졌다. 인터넷 자유의 기운이 감돌았고 그에 대한 증거가 있는 것 같았다. ‘트위터 혁명’이 전 세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증거에 결함이 있었다.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위가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은 대부분의 유럽, 미국 언론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트위터를 통해 영어 또는 프랑스어로 시위에 대해 알게 됐다. 따라서 트위터가 문자 메시지나 알자지라(Al Jazeera) 위성 텔레비전보다 이 운동을 확산시키는데 더 큰 역할을 했으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혁명 전 튀니지에서 사람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흔적이 있는 트위터 계좌는 200여 개에 불과했다. (트위터는 2012년까지는 아랍어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20% 미만의 튀니지 국민이 소셜 미디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휴대폰을 사용했다. 놀랍지 않게도, 시위자들은 늘 그래왔듯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소통 도구를 사용했다.

이집트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 1월, 분노한 사람들이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포트 사이드(Port Said)의 거리를 가득 메웠을 때, 많은 사람은 트위터가 이집트에서 세계화를 지지하고 도시에 살며 많은 교육을 받은 엘리트가 사용하는 특별한 소통의 창구보다 더 많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이 또한 부정확한 추측이었다. 2011년 이집트에는 트위터 사용자가 13만 명 미만이었다. 그러나 이 시위 역시 트위터 혁명에 대한 미사여구가 되었을 뿐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가 도시민과 엘리트 시위대에게 제공한 것은 튀니지와 이집트의 혁명에 중요했지만, 결정적인 역할은 하지 못했다. 소셜 미디어가 한 일은 대부분 다른 나라 사람들은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리는 것이었다.

한편, 이 혁명들의 초반부 성공 때문에 (이집트에서는 빠르고 잔인하게 상황이 반전됐고 튀니지에서는 오늘날까지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기술 낙관론자들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다른 모든 요소를 보지 못했다. 이 요소들은 정권을 약화시킨 몇몇 경제적, 정치적 실수와 더불어 아랍의 봄 시위 같은 기회를 수십 년 동안 준비해 왔던 일부 운동권을 아우른다.  

이집트와 튀니지 혁명 모두 몇 주 만에 시위 지도자의 축출로 이어지면서 이 빠른 진행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2011년에 일어난 다른 봉기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다. 빨리 끝나지 않은 봉기도 있었고 매끄럽게 끝나지 않은 봉기도 있었고 전혀 끝나지 않은 봉기도 있었다. 세계가 카이로와 튀니스의 거리를 지켜보고 있는 동안, 시위자들은 바레인, 레바논, 모로코에서 혁명이나 개혁을 요구했다.

모로코 국왕 모하메드 6세는 시늉만 낸 개혁을 했을 뿐이고, 리비아에서 유사하게 일어난 봉기는 2011년 8월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추방되면서 서서히 끝났다. 그리고, 아주 불길하게도, 시위에 대한 낙관론은 시리아로 퍼져나갔다. 시리아에서는 오늘날까지 내전이 잔인하게 계속되고 있고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 대통령은 확고하게 나라를 장악한 상태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랍의 봄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화가 나타났다: 친 민주적인 개혁가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많은 사람이 클린턴의 ‘인터넷 자유’ 의제를 오랫동안 진지하게 받아들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기능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삶의 질을 향상하리라는 2010년대 인터넷 신화는 부분적으로는 실현된 것 같으나, 건전한 민주국가로 성장하려면 우리에게는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 [사진=SAM WHITNEY/GETTY IMAGES]
민주주의와 삶의 질을 향상하리라는 2010년대 인터넷 신화는 부분적으로는 실현된 것 같으나, 건전한 민주국가로 성장하려면 우리에게는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 [사진=SAM WHITNEY/GETTY IMAGES]

 

자신들을 과대평가한 홍보 효과를 이용해서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정치와 각종 정책에서 더 중심적인 역할을 하려고 했다. 동시에,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는 그들의 영향력을 극적으로 늘렸다. 2018년에 이르러 3500만 명 이상의 이집트인(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정기적으로 페이스북을 사용했고, 200만 명 이상의 이집트인이 트위터를 사용했다. 2010년대 초반에만 해도 페이스북은 거의 깔려있지 않았으나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휴대폰에 설치된 페이스북 애플리케이션은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세계 소식을 접하게 되는 주요 정보 창구가 됐다.

2019년 페이스북은 조직화에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이 서비스는 어떤 의미에서 10년 전부터 상상했던 바로 그 역할로 성장했다. 워싱턴DC 도심 한복판에 있는 내셔널 몰(National Mall)공원에 반트럼프 시위대를 가득 채우거나 미국 태생을 위한 반 이민주의 총선거를 위한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싶다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뭉치고 행동하게 하는 이상적인 수단은 페이스북이다.

세계적인 규모, 정밀한 광고 플랫폼, 그리고 격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콘텐츠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페이스북은 모든 종류의 정치 조직 담당자들에게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도구가 된 것 같다. 2010년의 신화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실현된 것 같았다.

그러나 건전한 민주국가로 성장하려면 동기부여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이들에게는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 수십억 명에게 선전, 오보, 뉴스를 전달하는 주요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 중 그 어느 플랫폼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냉정하고, 정보에 기반한 논의를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들은 우리가 앞으로 10년 동안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인 이주, 전염병, 기후변화 같은 유형의 담론을 다루는 데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을 줄 세우고 격분케 하는 것은 정체성 관계없이 지켜야 하는 시민의식을 이탈 시키고 학교와 언론기관 그리고 과학 단체에 이르기까지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관들에 대한 신뢰를 손상할 수 있다. 2011년의 장밋빛 낙관론이 곧 디지털 혁명의 어두운 면으로 빠져들었다는 사실은 너무 잘 알려져서 이제는 더 이상 모른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변화 이면에는 두 정치적 사건이 있다.  첫 번째 사건은 과거 정보 기관에서 일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2013년 미국 정부가 주요 데이터 회사의 보안 채널을 침입해서 미국인 당사자들은 알지 못한 채 그들을 추적하고 개개인의 프로필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개인 정보를 담는 데이터 회사의 보안 채널은 비공개이며 ‘무해한’ 감시 시스템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미국 시민들은 편의와 개인화를 위해 입력한 개개인의 선호, 표현, 욕망을 추적한 정보들이 설명할 수 없는 미정부 관계자들에게 넘겨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노든의 내부 고발로 대중은 엄청난 데이터 감시의 위험에 논의를 시작했고 기자들과 시민들은 추가적인 폭로에 민감해졌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런던의 한 컨설팅 회사가 페이스북에서 도둑질한 유권자 데이터의 범위를 가디언과 뉴욕 타임스가 폭로했던 일이 두 번째 사건이다. 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Cambridge Analytica)는 심리 상태를 바탕으로 사용자들을 분류할 수 있는 마법의 공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이 회사의 그럴듯한 상품은 전 세계에 있는 정치 조직을 대상으로 판매됐다.

이 가설은 물론 허풍이었고, 2016년이 되면 게임은 끝났어야 했다. 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에게 의존하지만, 아니 어쩌면 의존해서였는지, 테드 크루즈의 대선 출마는 흐지부지됐다. 그해 여름 미국 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 이사회의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장악했을 때 그는 회사의 서비스를 들여왔다.

트럼프 캠페인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속지 않았다. 그들은 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의 2년 된 사용자 데이터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페이스북의 표적화 기술과 직원들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은 강력한 광고 시스템을 통해 트럼프 캠페인 팀이 도달하고자 하는 정확한 유권자들과 이들을 연결해 주어서 기뻤다.

트럼프의 선거 캠페인 팀이 유권자들을 같은 부류로 분할하고 그들에게 기부, 집회 참석, 집마다 방문, 그리고 궁극적으로 트럼프에게 표를 주도록 맞춤형 메시지를 보낼 수 있도록, 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 직원들과 같은 샌안토니오 사무실에 앉아있던 페이스북 직원들은 트럼프를 도왔다. 트럼프는 그를 대통령 집무실에 앉힌 3개 주에서 8만 표도 채 안 되는 표 차이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해에 수백 가지 다른 것들이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지만, 트럼프의 디지털 선거캠프 수석 브래드 파스케일(Brad Parscale)은 경합 주(swing states)에서 잠재적인 트럼프 유권자들을 식별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페이스북의 능력 덕분에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분명히 페이스북은 필리핀에 로드리고 두테르테를, 인도에 나렌드라 모디에게 그랬듯이 트럼프를 밀어줬다. 페이스북은 권위주의적 성향을 가진 또 다른 후보인 자이어 볼소나로(Jair Bolsonaro)가 2018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는 데 일조했다. 볼소나로는 모디와 마찬가지로 페이스북, 유튜브, 그리고 페이스북의 암호화된 개인 메시지 서비스인 왓츠앱(WhatsApp)에서 캠페인을 벌였다.

한편, 뉴스 미디어는 페이스북이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발생한 종파 간 폭력뿐만 아니라 미얀마의 대량학살에 대한 요청을 증폭시킨 역할을 보도했다. 다른 사회관계망서비스들도 파괴적이고 증오가 가득 찬 내용을 퍼뜨리는 데 있어서 과실이 있다고 지적 받았다.

보고서는 유튜브의 추천 엔진이 어떻게 비디오 게임 팬들을 여성 혐오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비디오로 유입시키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트위터는 전 세계 중도좌파 민주국가들을 분열 시키는 것을 목표로 선전을 증폭시키는 매크로 프로그램(동일작업 반복 프로그램)으로 로 채워져 있다고 보고서는 언급했다.

결국 2010년의 신화는 또 다른 신화로 바뀌었다. 한때 온라인 플랫폼이 전 세계의 독재자들을 내쫓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을 때, 우리는 같은 기술들이 편협한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권위주의 정권을 지지하는 행동을 하는 등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정반대의 효과를 불러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관념 모두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온라인 플랫폼들은 권력의 과잉과 집중에 맞서야 한다는 명확한 의제로 대중을 이끌지 않는다. 기술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지만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25억 명의 사용자에게 100여 개 이상의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페이스북은 지금까지 인간이 사용했던 그 어떤 의사소통 수단과도 다르다. 페이스북은 대중들의 비난과 규제기관의 공격을 정면으로 어느 정도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제임스 본드 영화에 나오는 악당과 같은 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 운영자들에게 우리의 운명을 탓할 필요가 없듯이, 우리는 페이스북이 단지 세계에 이미 존재하는 위험한 추세를 증폭시키고 집중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기술은 이를 사용하는 사람과 구별되지 않는다. 기술은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이 말한 것처럼 우리 자신의 연장선이다. 기술은 자체적인 디자인과 사용 목적을 통해 사람이 덧입히는 편견을 구현할 것이다. 어떤 기술도 디자인이나 효과 면에서 중립적이지 않다. 그들은 어떤 행동은 더 쉽게 하고 특정 행동은 더 어렵게 한다. 그러한 편견을 알아차리고 바로잡는 데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는 과학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거나 인종 차별주의자들에게 인종주의를 주입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그 목표들을 성취하기 위한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들로 판명됐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위해 발명됐다. 어떤 기술도 그 형태나 용도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술을 만들고, 기술은 사람을 형성한다. 이는 복잡한 변증법이다.

사람들은 이성적인 어른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 느리지만 꾸준하게 저하된다는 사실에 너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우파 선전의 목표는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과 같은 측정 가능한 단기적인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니다.

목표는 사람들이 가능하거나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범위를 바꾸거나 허용 가능한 범위를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것은 규범을 깨기 위해서는 장기전에 돌입하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성공은 몇 년이 지난 후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따라온다.

우리는 이러한 기술과 기술이 내뿜는 쓰레기에 저항할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저항은 자각과 확고한 정치 운동 없이는 불가능하다. 법과 규제가 필요하다. 좋은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삶으로 인도하는 제도와 기술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아야 그렇게 할 수 있다.

새로운 10년에 접어들면서, 감시, 선전, 그리고 인간의 삶을 향상하기 위한 단순한 연결의 가능성에 대해 더 냉소적으로 변하고 질책을 받는 동안, 우리는 남겨진 것에 대해 무의미한 편집증에 빠져들 위험으로 휘청거린다. 클린턴의 2010년 연설은 고통스러운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클린턴의 2010년 연설은 또한 사람이 구축한 세계 정보 환경을 이해하고 새로운 세계 정보 환경을 상상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 위 기사는 와이어드US(WIRED.com)에 게재된 것을 와이어드코리아(WIRED.kr)가 번역한 것입니다.

 

[참조기사 및 링크]

The Two Myths of the Internet

와이어드 코리아=문재호 기자 jmoon@wir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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