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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 쉽게 잃는다면 ‘중세 시대 수도승’처럼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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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 쉽게 잃는다면 ‘중세 시대 수도승’처럼 생각하라
전기나 실시간 수요 맞춤형 TV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지금보다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사실, 알고 보면 집중력이 낮은 이들은 중세 시대에 집중력이 분산되기 쉬운 수도승과 여러모로 공통점이 있다.
By MATT REYNOLDS, WIRED UK

중세 시대 수도승은 여러모로 링크드인 열성 사용자의 시초와 같다. 확고하면서도 자기 홍보 능력이 있는 이들은 자신의 일에 헌신하는 다른 초기 기독교 신자에게 영감이 될 만한 이야기를 읽고 공유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라라는 인물은 강 옆에 살면서도 한 번도 방향을 보지 않았다. 이는 사라의 신앙에 대한 헌신이다. 제임스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동안 기도에 전념해 눈 속에 파묻혀서 이웃의 구조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 신자 중 피코미우스(Pachomius)처럼 집중력을 저하하는 요소를 손쉽게 떨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4세기 수도승이었던 피코미우스는 나체 상태인 여성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행렬한 뒤 거주지 벽에서 발생한 굉음, 정교한 코미디로 웃기려 한 악마를 이겨냈다. 초기 기독교 작가에게 피코미우스와 그의 일족은 다른 수도승이 일치시키려 했던 집중력의 높은 기준을 설정했다. 최고 수준으로 집중했던 당시는 작업 목표와 성급함, 자기 발전이었다.

악마의 방해 때문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더라도 중세 시대의 수도승이 집중력 분산과 관련하여 여러 교훈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자기 동기 부여와 생산성을 우려하는 것은 집중력 저하를 유발하는 기술 때문에 겪는 어려움의 세계의 산물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1,500년 전의 수도승은 여러모로 오늘날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집중력 저하를 우려했다.  일과 사회적 관계 요구를 우려하면서도 최신 기술 때문에 발생하는 각종 집중력 저하 요소에 한탄하고, 생산성을 높일 삶을 위한 열정적인 삶을 모색한다. 실리콘밸리 일대 기술 전문가는 잊자. 초기 수도승이 인간이 항상 찾아 헤매던 생산성이 뛰어난 삶을 살아간 영웅인가?

제이미 크라이너(Jamie Kreiner)는 중세 시대 수도승이 오늘날 인간의 집중력 저하 문제에 교훈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세 시대 역사학자이자 신간 저서 『방황하는 마음: 중세 시대 수도승이 우리에게 말하는 집중력 저하(The Wandering Mind: What Medieval Monks Tell Us About Distraction)』의 저자이다. 크라이너의 신간 저서는 300~900년 전의 인간이 집중력을 높인 방식을 다루었다. 크라이너는 수도승이 집중력 저하를 집착과 가까운 수준으로 중요하게 생각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위험성이 더 높을 수는 없었다. 크라이너는 "중세 시대 수도승은 다른 인간과는 달리 인생 전체, 그리고 전체 자아를 신앙에 헌신해 신에만 집중하려 했다. 그리고 성실함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수도승은 다른 여러 문제보다 집중력 저하에 대해 작성하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중세 시대 수도승이 서로 기도와 연구에 집중하도록 독려한 주된 한 가지 방법은 극단적인 집중력 사례 공유이다. 간혹 기둥 꼭대기에서 살면서 발이 심각한 수준으로 세균에 감염되었는데도 단 한 순간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던 기둥 위의 성자 시몬(Simeon the Stylite)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는다. 어떤 때에는 수도승의 겸손함을 위해 지어진 이야기도 있다. 1,000년 된 라틴어 텍스트 아포테그마타 파트룸(Apophthegmata Patrum)은 집중력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수도승이 인근 마을에서 더 나은 집중력 유지 능력을 갖춘 것으로 유명한 식료품점 주인의 이야기를 듣게 된 사례를 다룬다. 수도승이 해당 식료품점을 찾았을 때는 음탕한 노래를 쉬지 않고 부르는 마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수도승이 식료품점 주인에게 저속한 노래가 들리는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유지하는 비결을 묻자 식료품점 주인은 무슨 노래가 들리는지 되물어보았다. 식료품점 주인은 집중하느라 어떠한 노래도 듣지 못했다.
 
[사진=Freepik]
[사진=Freepik]

이와 같은 이야기는 수도승이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수도승은 기계 마냥 집중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지 않았다.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은 집중력이 짧다. 크라이너는 "과감함은 일종의 동정심이다. 수도승은 서로 동정심을 잘 느끼며, 집중력을 유지한 채로 수양을 마치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안다"라고 말했다. 평범한 인간이 집중력을 잃을 것을 우려하는 일을 보기는 매우 어렵다. 인간은 항상 고귀한 목표를 따르지 않는 것을 끔찍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크라이너가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날 성급한 문화로는 항상 모든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온라인 자기 의존 인플루언서가 넘쳐나는 세계에서는 세계를 바꾸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누구나 성공할 수는 있다. 다만, 충분한 수준의 성공을 원할 때만 가능하다. 혹은 '러브 아일랜드(Love Island)’의 몰리 메이 헤이그(Molly-Mae Hague)는 '다이어리 오브 어 CEO(Diary of a CEO)' 팟캐스트에서 "주어진 삶은 하나이다. 무엇을 하느냐는 개인의 몫에 달려있다"라고 말한 것을 떠올려 보아라.

현실 세계에서는 개인의 삶을 바꾸기 어렵다. 외부 세계를 얼마나 차단하려 하느냐를 떠나 서서히 바꾸고 계획을 망치는 방식이 있다. 바로 오늘날에도 수천 년 전과 같이 적용되는 바이다. 수도승 프랜지(Frange)는 오늘날 이집트 도시 룩소르와 가까운 곳에 있는 어느 한 오래된 묘지 안에서 홀로 살았다. 그러나 은둔 생활을 하면서도 집중력 분산 요소를 피할 수 없었다. 프랜지는 깨진 도자기 그릇이 남아 있는 곳에서 자신이 70명이 넘는 특파원과 접촉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프랜지는 많은 이들에게서 가축과 아이들을 축복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프랜지는 책을 빌려달라고 부탁하고,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러나 간혹 혼자 있고 싶다는 바람을 작성했다.

크라이너는 "수도승의 해결책은 인간이 환경과 자원에 제한된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에 매우 민감했다"라고 말했다. 평범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수도승은 시간에 대해 더 경쟁적인 요구를 가졌으며, 내면의 삶과 지역사회에서의 역할 간 균형을 맞추어야 했다. 수도승은 삶의 두 가지 양면을 인정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프란지는 진정성이 있었다. (필자는 프란지가 이에 동의했을 것으로 확신한다.) 또, 영적인 일조차 때로 다른 요구에 맞서지만, 현실 세계는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모든 상호작용을 기피하는 화려한 은둔은 과거의 SNS 과시 요소였다. 그러나 수도승만이 의미 있고 집중력을 유지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세 시대 기독교 신자는 항상 일상에서 최대한 얻을 수 있는 바를 찾아 나섰다. 오늘날 테크 업계 대기업의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 집착하듯 4세기 신학자 아우구스틴 히포(Augustine of Hippo)는 사도의 생산성 요령을 더 많이 알기를 바랐다. 아우구스틴은 '수도승의 세계(The Work of Monks)'에서 폴이 하루를 똑같이 나눈 법을 궁금해했다. 폴이 자신의 일과를 기록한다면, 수도승이 따라 할 만한 유용한 지침을 얻게 될 것이라는 불평을 했다. 다른 수도승은 자기만의 일상 속 집중력 유지 지침을 갖고 있었다. 6세기 '성 베네딕티의 규칙(Rule of Saint Benedict)'은 수도승이 따라야 할 엄격한 일상을 정했다. 규칙에는 식사 시간과 먹어야 할 음식, 얼마나 오래 일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동 중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법까지 다루었다.

크라이너는 "수도승은 오늘날 작가가 다른 작가의 일정에 대한 집착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작가가 서로의 작업을 확인해 모두 제 일정대로 일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가상 업무 집단과 같이 일상생활은 더 깊은 목적을 유지할 수 있다. 크라이너는 "보통 다른 수도승과 함께 규칙에 따라 일상생활을 한다. 일상생활을 실제로 향상할 수 있는 일종의 소속감과 상호 지원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만약, 코앞으로 다가온 마감 기한을 지키기 어렵다면, 지지하는 방식으로 책임감을 지도록 도울 친구나 동료에게 자신이 느끼는 부담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가?

물론 최고의 일상생활도 최신 기술 때문에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4세기, 고대 서적이라는 기이한 혁신이 시작돼 수도승 사이에서 의심과 강력한 흥미 자극이 시작됐다. 고대 서적의 전조로 고문서 사본은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문서 저장 방법이었던 두루마리와 비교하여 긴 텍스트를 구성하는 더 우아한 방법을 제공했다. 쉽게 셀 수 있는 페이지와 베개 같은 형태로, 일부 수도사들은 두루마리와 같은 형태의 텍스트 때문에 수도승이 페이지의 내용에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학습을 강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았다. 그들은 고대 서적의 여백에 자신의 의견을 추가하고 내용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구절을 강조했다. 크라이너는 "현대의 산만함에 대한 비평가들이 우리가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제안할 때, 수도승의 노력을 활용해 기술을 집중력 유지를 위한 개인의 투쟁에서 더 효과적인 파트너로 만들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기술은 올바른 방법으로 사용할 때만 인간의 일을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아마도 수도승은 많은 이들이 상상한 것처럼 기술 공포 세력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수녀는 세상을 예배당 안으로 끌어들이려 틱톡을 사용한다. 크라이너는 초기 기독교 신자도 소셜 미디어에 손을 대려고 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결국 성 제롬(Saint Jerome)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서브트윗을 발명했다. 크라이너는 "성 제롬은 너무 판단력이 강해서 무언가를 말할 때 다른 수도승은 성 제롬이 자신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걱정할 것"이라며, "성 제롬은 항상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거나 말다툼을 했다"라고 말했다.

팀 페리스(Tim Ferriss)와 같은 현대의 생산성 전문가에게 눈을 돌리는 대신 원래의 일 중독자의 삶을 탐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지혜가 있을 것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고군분투했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영감을 찾았다. 또, 가시 돋친 말을 주고받으며 최상의 작업 방식에 집착했다. 그러나 가장 헌신적인 수도승도 절대적인 단일성을 달성하는 것은 순간적인 순간 동안만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인간에 불과했다.

** 위 기사는 와이어드UK(WIRED.co.uk)에 게재된 것을 와이어드코리아(WIRED.kr)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고다솔 에디터)

<기사원문>
Easily Distracted? You Need to Think Like a Medieval Mo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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