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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멀티버스 영화 흥행 일등공신은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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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멀티버스 영화 흥행 일등공신은 ‘인터넷’?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부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까지 무한한 세계를 그린 이야기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에서 다양한 정체성을 비유한다.
By SHANTI ESCALANTE-DE MATTEI, WIRED US

이것이 개입한 뒤 공상과학은 기술적 우려를 보는 프리즘이 되었다. 고질라와 슈퍼맨이 죽음의 재에서 나왔다. 로봇 애호가는 시청자가 인간의 삶의 독특한 특성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했다. 또, 태양계를 넘어서 흥미로우면서도 논리적이지 않은 추출주의 행진도 의문의 대상이 되었다. 공상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서사는 카타르시스를 통해 두려움을 떨쳐내려 한다. 인류는 괴수보다 영리하다. 과학으로 도망친 질병 감염자를 치유한다. 현대에서 모두 우려하는 바와 같이 인터넷 자아와 현실 세계 자아 간의 분리가 공상과학의 극적인 측면으로 접어들도록 하는 가장 예상치 못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 6개월 동안 영화계에는 어느 정도 공상과학 작품이 넘쳐났다. 어쩌면, 이는 다루기 매우 어려운 멀티버스 영화라는 영역을 포함하기 적합한 듯하다.

인터넷이 공상과학에 적합한 모습이 발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몰론 다른 시도도 이루어졌다. 트론(Tron)부터 해커스(Hackers),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Ralph Breaks the Internet)까지 많은 작품이 반액체 상태인 데이터가 캔디 색상의 네트워크를 이동하는 사이버 세계로 접속한 것을 시각화하려 했다. 하지만 영화가 그려낸 요소는 메타버스라는 바람이지, 인간이 인터넷이 강화된 삶을 살면서 느끼는 감정이라는 실제 경험을 그리지 않는다.

그 특성을 고려하여 문제점을 이야기하자면, 시청자가 유리나 화면을 보면서 환상적인 요소로 빠져들 때, 실제 그와 함께 실행하도록 남은 부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경험은 정신적인 요소이지, 시각적 혹은 신체적 요소가 아니다. 인터넷은 갑작스러운 혁명을 일으켰으나 온라인 생활 경험은 지나친 화면 드래그와 같은 요소를 포함한다. 화면을 내려보지 않으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가?누군가가 키보드를 입력하거나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일은 참여가 아니다. 소셜 웹의 다양한 영역을 흉내 내는 여러 세계를 제작한다.

멀티버스는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몰입감이 뛰어나지 않지만, 그 비용이 비싸다. 멀티버스의 이론은 여러 세계가 무한정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각각의 세계는 다른 여러 세계와 결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효과가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돌아갈 길은 없다(Spider-Man: No Way Home), 그리고 최근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까지 멀티버스는 제한 없는 결합 기회는 적으며, 자아와 사회 분열 잠재력을 더 보여준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주인공 에블린(Evelyn)을 예시로 살펴보자. 에블린은 날카로우면서도 집중력이 부족하고, 가족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자기 삶을 즐기지도 못한다. 뇌의 모든 공간을 사업 운영 유지와 함께 세금 감사 문제를 다루느라 소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블린의 남편 알파 웨이몬드(Alpha Waymond)는 다른 세계에서 와서 에블린의 삶을 망친다. 에블린은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다른 인물을 소개받는다. 에블린이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가지 않고, 중국 집에 계속 머물렀다면 쿵푸 마스터와 영화배우가 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삶에서 에블린은 셰프가 되었다. 또 다른 삶에서는 손톱을 밝게 칠한 모습이며, 혼란스러운 동성애 관계를 즐긴다. 깊은 곳에 내재한 두려움을 확인했다. 알파 웨이몬드는 “지금 당신은 가장 지루한 삶을 사는 에블린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A24]
[사진=A24]

영원히 살 수 없는 삶에서 현재의 삶이 더 멋지면서 부유하고 능력이 뛰어나면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외로움이 덜한 삶을 살 수 있는 용감한 선택을 뒤로한 한 가지 우연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더 마음이 아픈 일이 있을까? 어린 시절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은 적이 없다면, 매우 놀라운 일일 것이다. 어린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외모가 더 멋지거나 영리하거나 인기가 뛰어난 사람이 될 방법을 궁금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으나 상당수가 결정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이 닫히고 있다. 그 속도는 빠르면서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에블린이 다른 자아로 접근하고자 사용한 시간 점프 기기와 같이 인터넷은 그 자체가 미래를 보여준다. 타인의 삶에서는 일시적으로 확정한 뒤 실제 택하지 않은 부분을 책정하고는 경험을 누린다. 그러나 인터넷은 우울한 타인의 영상 피드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호기심과 익명성이라는 축복 때문에 책임감이 바뀌거나 규범의 전혀 존재하지 않아, 인터넷은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하는 공간이며, 현재 물리적 상황을 넘어 자기를 형성해야 한다. 에블린이 여러 기술과 다른 세계의 삶으로 접어들어, 어리석으면서 베니하나(Benihana)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악당과 싸우는 자아를 접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온라인 정체성 탐색의 장점만 드러났다. 익명성은 영웅을 괴물로 변신시키기도 한다. 피터 파커(Peter Parker)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돌아갈 길은 없다 초기 4분 동안 온라인 정체성 탐색의 단점을 깨닫게 된다. 그는 대형 플랫폼의 어느 한 논객이 공개한 잘못된 영상 탓에 살인자가 된다. (물론, 추후 피터는 링 라이트를 보유하고, 초록색 배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이 된다.) 피터는 취소와 함께 죽음보다 끔찍한 운명을 맞이한다. 이제 피터와 피터의 친구 모두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피터의 여자친구 MJ가 후회는 없다고 말하지만, 피터는 이모가 설명한 것처럼 다른 두 가지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파커는 두 가지 삶을 다룰 수 없다. 진짜 피터와 인터넷에 알려진 피터는 지나친 수준으로 분리되었다.

공개적 삶과 개인적 삶의 경계가 모호해지거나 노골적으로 파괴되면, 개인의 자아와 공개적 자아를 자발적으로 포기해, 다양한 세계를 오가면서 다양한 삶을 지켜보고자 한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에블린처럼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바람이 깊어진다. 피터는 개인의 삶을 살던 자아를 원할 것이다. 에블린은 젊은 시절이라는 단순한 사항을 원할 것이다. 대신, 피터와 에블린 모두 적의 공격을 마주하면서 여러 자아로 분리된다. 사악한 적이 주인공의 세계와는 낯선 세계의 모티브에 따라 움직인다. 대중이 기이한 반공개 공간에서 개인적인 일을 털어놓으면서 개인의 상황이나 의도를 알지 못하는 타인의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 인터넷의 악몽이 아닌가?

다양한 영화에 등장하는 멀티버스 서사는 궁극적으로 전체를 향해 나아간다. 먼저 분리 사실을 인지하고 더 나아가 축복해야 하지만, 여러 세계와 자아를 오가는 일은 지속 가능한 상태가 아니다. 피터와 에블린 모두 다양한 자아는 물론이고, 적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전체 상황을 찾는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계몽과 같다. 영화 전체 내용 중 눈물샘을 자극하는 순간은 에블린의 남편이 에블린에게 애원하는 순간이다. “당신이 파이터인 것을 안다”라고 말하면서도 방어적인 태도를 포기하도록 요청한다. 이어, 에블린의 남편은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은 친절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한 치 앞을 모를 때는 친절해지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에블린과 피터 모두 자기방어와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행동이 의미하는 바가 적에게 동정심을 품고 대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슈퍼히어로와 환상 속 악당이 싸우는 장면을 화면으로 보는 순간은 온라인에서 인간성을 빼앗기는 공격과는 전혀 다르다.

에블린과 피터 모두 힘이 있다. 에블린과 피터가 적을 돌보는 일은 말 그대로 적을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새로운 인물로 바꾼다. 트랜스젠더 혐오 세력과 낙태 반대 세력과 일상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악성 세력과 같은 이념적 지도 세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공감 부족과 이념적 지도 세력의 권리가 너무 비열한 것을 우려한 이들 때문이라는 말을 듣는 일이 흔하다는 사실이 낙담스러울 뿐이다.

현실 세계에서 누군가의 방어를 없애는 일이 생명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온라인에서 이를 제거하는 일은 자기 정체성을 더는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껴, 보호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안전과 공감을 원한다면, 실험과 커뮤니티 형성, 경계 없는 지식 접근, 공유 욕구 준수라는 인터넷의 고유한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 다양성 축복과 지지를 위한 새로운 방식을 형성할 수 있다. 바로 멀티버스로써의 인터넷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다양한 세계를 이동하면서 서로 낯선 존재가 되며, 서로 만나게 될 것이다. 필자도 어느 한 세계에 도달했다.

** 위 기사는 와이어드US(WIRED.com)에 게재된 것을 와이어드코리아(WIRED.kr)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고다솔 에디터)

<기사원문>
The Internet Gave Rise to the Modern Multivers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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