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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업계, 러시아 의약품 수출 중단 둘러싼 윤리적 딜레마 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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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업계, 러시아 의약품 수출 중단 둘러싼 윤리적 딜레마 직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 뒤따른 각종 제재와 보이콧은 거의 모든 업계가 러시아 수출을 억제했다. 그러나 제약 업계는 예외이다. 러시아 의약품 수출 중단 여부는 제약사의 판단에 달려있다.
By GRACE BROWNE, WIRED UK

대기업이 대거 러시아를 떠났으며, 애플과 셸,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 대다수 신용카드 대기업을 포함해 기업 400여 곳이 러시아와의 관계 단절을 선언하며, 러시아 사업을 중단하거나 전면 철수했다. 그러나 제약 업계 대기업은 러시아 사업 중단 추세를 거부한다.

제약 업계는 윤리적 난제를 직면했다. 제약 회사가 러시아 사업을 철수한다면, 러시아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단순한 프라푸치노나 디자이너 상품 구매 경로가 막히는 수준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암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을 구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지금까지 제약 업계가 지킨 윤리적 문제이다.

유럽 제약 업계를 대표하는 업계 기관인 유럽의약품산업협회(EFPIA)의 앤드류 파우리 스미스(Andrew Powrie-Smith) 국장은 와이어드에 보낸 공식 성명을 통해 “제약 업계는 장소 불문 환자가 있는 곳 어디에나 의약품과 백신 공급을 보장해야 한다는 고유한 인도주의적 의무를 지녔다. 우크라이나와 그 인접 국가, 러시아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존슨앤존슨 최고 재무 관리자 조 월크(Joe Wolk)가 3월 8일(현지 시각), 투자자 콘퍼런스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의약품을 필요한 환자에게 전달하지 않는다면, 환자가 사망하거나 건강 상태가 위험해질 수 있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유럽 국가 등 서양 국가가 시행한 각종 제재는 러시아 은행과 명품 브랜드, 석유 재벌, 원유, 가스 등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식품과 의약품 등 필수품은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즉, 제약 업계의 러시아 사업 중단 여부는 기업 자체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의미이다. 3월 14일(현지 시각), 화이자는 러시아에 인도주의적 의약품 공급을 유지한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함과 동시에 우크라이나 국민을 지원하기 위한 모든 요소를 기부했다. 화이자의 공식 성명에는 “러시아로 의약품 공급 흐름을 차단하는 행위는 환자를 우선시한다는 창립 원칙의 명백한 위반 사항이다”라는 내용이 명시됐다. 같은 날, 바이엘(Bayer)도 모든 국가에 의약품을 공급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는 내용의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바이엘은 “암 환자나 심혈관 질환 환자를 비롯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보건 용품과 농산물 공급 중단, 임신부와 아동을 위한 의약품 공급 중단, 식량 재배에 필요한 씨앗 공급 중단은 지금도 이어지는 전쟁의 인류 피해를 더 악화할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존슨앤존슨과 로슈(Roche)는 과거에도 비슷한 내용의 공식 성명을 발표했으며, 미국 제약 유통 기업 아메리소스버겐(AmerisourceBergen)도 러시아에서 진행하던 자발적으로 지원한 환자 대상 신약 효과 실험인 임상시험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임상시험 중심지이다. 양국 모두 신약 치료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간혹 목숨을 유지할 마지막 수단이 될 수 있는 치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가 실험에 참가하기도 한다.) 아메리소스버겐은 러시아에서 임상시험 60여 건을 지원 중이며, 공식 성명을 통해 “러시아에서 진행하는 임상시험을 즉각 중단한다면, 가장 취약한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보복을 가할 위험성이 높다”라고 발표했다.

옥스퍼드 윤리 및 법률, 무력 갈등 연구소(Oxford Institute for Ethics, Law and Armed Conflict)의 수석 연구 펠로인 에마뉴엘라 차이라 길라드(Emanuela-Chiara Gillard)는 법적으로 말하자면, 제약 업계가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제약 회사는 내일 당장 러시아에서 판매하던 생명 유지에 필요한 의약품 판매를 전면 중단할 수 있으며, 사업 거래 선택 재량을 지녔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교 경제 윤리학 연구원인 타드그 오 라오그헤어(Tadhg Ó Laoghaire) 박사도 길라드 박사와 같은 주장을 펼쳤다. 오 라오그헤어는 “제약 회사가 러시아 소비자를 대상으로 의약품을 계속 공급해야 할 법률상 의무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법률상 의무가 없다고 해도 여전히 윤리적 의무가 뒤따를 수 있다. 제약 회사는 매우 특별한 역할을 한다. 단순히 외부 개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권 문제가 아니다. 만약, 제약 회사가 러시아에 필수 의약품을 계속 공급하기로 결정한 뒤 러시아 사업을 철수한다면, 단순한 인권 침해 문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오 라오그헤어 박사는 “실질적으로 제약 회사가 인권 침해를 두고 위협하는 행위이다”라고 말했다.
 
[사진=Unsplash]
[사진=Unsplash]

그러나 모두 제약 업계가 러시아에 제품 수출을 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3월 11일(현지 시각), 제약 업계 전문 매체 메드스케이프(Medscape) 비평에서 뉴욕대학교 그로스만의학대학원 소속 유명 의학 윤리학자인 아더 카플란(Arthur Caplan) 박사는 제약 업계에 “다른 서양 기업의 선례를 따라 푸틴이 집권한 러시아와의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환자의 생명 유지 관련 의약품이든 소비자 제품이든 모든 의약품이나 치료법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카플란 박사는 “러시아인은 치즈버거와 고급 커피 공급 중단뿐만 아니라 건강 유지에 필요한 상품 공급 중단으로 고통을 겪어야 한다”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직후 대부분 중소기업이지만, 바이오테크 업계 대표단은 러시아 기업과 자본 투자 중단, 러시아 기업과의 협력 관계 중단, 러시아 기업과의 상품 거래 중단 등을 포함해 러시아와의 즉각적인 경제적 관계 전면 단절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했다. 공개서한에는 “러시아의 침략 행위를 혐오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을 해야 한다”라고 작성되었다.

최근, 제약 업계 일부 관계자는 러시아로 일부 의약품 수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3월 15일(현지 시각), 미국 기업 엘리릴리(Eli Lilly)는 러시아에 비필수 의약품을 모두 공급 중단한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제약 회사 중 최초로 러시아 대상 특정 의약품 수출을 제한한 사례이다. 엘리릴리의 필수 의약품 종류는 엘리릴리 자체 판단에 달려있다. 엘리릴리 대변인은 와이어드에 보낸 메일을 통해 필수 의약품의 종류는 당뇨, 암과 같이 중증 질환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질병 치료용 의약품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비필수 의약품에는 발기부전 치료제인 시알리스(Cialis)가 포함된다.

미국 보톡스 제조사인 애브비(AbbVie)는 공식 성명을 통해 러시아 대상 모든 미용 제품 판매 사업 운영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형 의학 의료 장비 제조사인 콘포미스(Conformis)는 3월 2일(현지 시각), 공식 성명을 통해 “러시아와 러시아 관련 기관에 모든 의료 장비 공급을 중단한다”라고 발표했다.

보통 보건 관련 제품은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지만, 직접적인 수출 통제와 금융 제재 등 다른 경제 제재가 의약품 공급에 간접적인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이미 러시아에 확산된 여러 보도 내용을 통해 인슐린 등 일부 의약품 공급량이 적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덴마크 제약사이자 세계 최대 인슐린 제조사인 노보 노르디스크(Novo Nordisk)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계속 인슐린을 공급할 계획이지만, 여러 업계를 대상으로 시행된 제재가 의약품 공급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라고 밝혔다. 2019년, 미국의 이란 제재 시행 범위에 의약품은 포함되지 않았으나 이란 소비자의 극심한 의약품 구매 제한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알렸다. 실제로 제재가 문제를 일으킨 책임을 져야 할 기관을 직접 처벌하면서 현지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등 의도한 목적대로 시행될 가능성은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문제이다. 오 라오그헤어 박사는 “제재는 보통 정치계 최고위급 인사를 대상으로 확고히 시행된다. 만약, 자원이 거의 없다면, 결국 군대나 실제 최고위급 관료가 타격을 입은 뒤 일반 시민도 피해를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제약 업계는 윤리적 의무를 둘러싼 난제를 해결하느라 씨름하는 가운데, 일부 윤리학자는 의약품 공급 유지가 확실한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길라드 박사는 “나이키가 러시아에서 신발 판매를 전면 중단하는 것은 기꺼이 반긴다. 그러나 제약 회사의 상황은 다르다. 의약품과 의료 장비를 계속 공급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러시아 국민을 처벌하게 될 것이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 위 기사는 와이어드UK(WIRED.co.uk)에 게재된 것을 와이어드코리아(WIRED.kr)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고다솔 에디터)

<기사원문>
Big Pharma Faces an Ethical Dilemma: Should They Keep Selling to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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