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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상기시키기, 인생 향상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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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상기시키기, 인생 향상 가능하다?
와이어드 영적 조언 칼럼니스트가 사망을 상기시켜주는 앱으로 삶을 향상할 수 있는지 조언한다.
By MEGHAN O'GIEBLYN, WIRED US

요즘 들어 인생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 하루에 5회 언젠가는 사망하게 된다는 알림을 보내는 앱을 다운로드했다. 앱의 알림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실제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도록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지만, 오히려 불안감만 커졌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불안감이 삶에 집중하기 위한 핵심일까? 앱 자체가 실제 도움이 되는 것이 맞기는 할까?
- 죽음을 질문하는 어느 한 독자

죽음을 질문하는 독자에게
사연을 보낸 독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문제를 거부하기에 거의 모든 부분에서 제한되어 인간에게 매우 흔히 발생하는 문제인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든 스마트폰의 죽음 알림이든 죽음을 노골적으로 상기시킨다고 해서 깊은 구렁의 가치에 공포를 느끼거나 두려움에 떨도록 할 수 없다. 대신 모호한 불안감과 당장 환경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서서히 퍼지도록 한다. 영국 시인 W.H. 오든(W. H. Auden)이 말한 바와 같이 죽음은 공포 속에서 먼 곳에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와 같다. W.H. 오든의 명언은 사연자가 사용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앱인 위크록(WeCroak)이 인용한 키르케고르(Kierkegaard)와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마가렛 애트우드(Margaret Atwood)를 비롯한 여러 인물이 남긴 가치 있는 명언 인용구 중 하나이다.

인간은 무시하기 쉬운 속도로 서서히 확산되는 느린 움직임의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사회적 안보가 무너지고 있다. 빙하 해빙 속도가 빨라지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그 속도는 느리다. 해수면 기온은 명언이 요동치는 것과 같은 속도로 상승한다. 죽음은 이 모든 일의 이면에 내재해 있다. 때때로 인간의 어려움이 절망적인 상황은 자연재해나 UN 기후 보고와 같은 실질적인 문제를 통해 발생하지만, 그에 대한 경각심은 뉴스 보도 순환에 따라 약해진다. 혹자는 이견을 내놓을 수도 있지만, 지구 종말 시계는 생존 위기 시간 기준 단위를 자정까지 100초 단위로 지정하여 인간이 1분 30초 단위로 죽음을 맞이할 시간을 기록하도록 한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죽음 알림 앱은 본질적으로 개인용 지구 종말 시계와 같다. 사실, 일부 앱은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보면서 졸음이 달아나도록 만드는 실제 시계를 포함했다. 1998년부터 웹사이트가 활성화된 지구 종말 시계는 개인의 사망일을 예측하지만, 예측 결과는 연령과 BMI, 흡연 여부 등 다소 정확성이 낮은 데이터 조합을 기반으로 한다. 수년 전 개봉된 공포 영화인 카운트다운(Countdown)은 악마와의 거래를 다룬다는 사용자의 동의와 함께 초 단위를 포함하여 사망 시점을 본능적으로 이해하는 앱을 상상하였다. (영화의 태그라인은 “죽음? 죽음을 위한 앱이 있다.”이다) 카운트다운은 똑같은 전제에 따라 개발된 현실 세계의 앱에서 영감 받아 제작됐다. 그 전제는 초자연적 지식을 제외했으나 관객이 일시적으로 앱스토어를 실행하도록 할 정도로 두려움을 유발했다.

위크록은 카운트다운처럼 심각한 수준으로 기이한 앱이 아니다. 위크록 개발 동기가 된 죽음 관련 인용구는 사용자가 잠깐 멈춰서 그 순간에 하는 일을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상기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많은 심리 앱이 함께 사용하는 인용구이기도 하다. 위크록의 공동 창립자는 캔디 크러쉬 게임 중독 상태일 때 앱을 개발했다. 많은 사용자가 위크록은 트위터, 틱톡 등에 시간을 허비하지 못하도록 막는 경향이 있어, SNS에 삶을 낭비하지 않도록 맞설 수밖에 없도록 한다. 다시 말해, 위크록은 그 어느 때보다 확장된 범주와 함께 기술이 일으킨 문제 해결책으로 설계된 기술에 해당한다. 디지털 플랫폼이 인간의 죽음에 대한 각종 정확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집중을 분산시키면서 논리가 이어지도록 하는 가장 안정적인 수단으로 남는다면, 인간은 같은 수단으로 심리적 지지를 얻으면서 인간이 곧 다가올 죽음에 대한 인식이 더 깨어 있는 상태에서 편안함을 느끼도록 할 수 있다.

사연자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행복은 하루에 다섯 번 죽음을 깊이 생각하면서 얻을 수 있다는 부탄 속담이 위크록 개발의 부분적인 계기이다. 부탄은 종종 세계 행복 지수 1위에 이름을 올린다. 위크록 팀은 마음 챙김 문화에서 흔한 일상의 특이성을 다루면서 결국 번잡한 현대에서 인간을 해방한다는 해결책과 같은 동양의 전통을 나타낸다. 하지만, 위크록과 같은 앱 때문에 불안감만 커졌다는 반응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 무시하는 데 적응된 사실에 스스로 맞서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오히려 무료 앱을 이용한 서양의 죽음 부인이라는 전체 흐름을 번복할 수 있다는 개념은 자극보다는 지나친 기술적 자신감이 더 크다) 죽음을 깊이 생각하는 부탄의 관습은 죽음을 피하지 않는 광범위한 문화적 맥락에서 기인한다. 부탄의 장례 의식과 49일간의 죽음 애도 기간 관찰 전통 설명으로 증거를 찾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부탄 내 신도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종교인 불교는 초월성은 탈피주의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삶 자체가 고통스럽다는 사실과 같이 존재라는 잔혹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결국 죽음 앱은 경각심을 일깨우기보다는 자동으로 현시대에 선호하는 정보라는 종교의 일시적 중단을 반영한 다른 거짓된 편안함을 주는 것에 더 가깝다. 일상에서 미래 예측 앱과 내일 날씨나 사용자의 단골 식당 만석 여부 통계 수치 제공 앱에 의존하는 이가 많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예측이 불가능한 여러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자연스러운 듯하다. 그러나 죽음은 여전히 IP 주소가 없어, 구글 어스에서는 검색할 수 없는 ‘발견할 수 없는 국가’인 위치 검색 불가능 지역에만 존재한다. 이로 미루어 보아 사연자의 불안감 발생에 부분적인 원인을 미친 부분은 앱 자체가 실제로 두려움을 다루지 않는다는 사연자의 인식이지, 앱 자체는 아닌 듯하다. 더 깊이 보자면, 사연자도 죽음을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것이다.

당장 위크록을 삭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궁극적으로 아무런 환상이 없이 살 수 있다는 개념을 회의적으로 보며, 이는 영원한 공허감의 어떠한 조짐에도 움찔할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 매우 확실한 사실이다. 대다수 인류는 죽음이라는 지식을 멀리하고자 어느 쪽에든 의지할 것이다. 만약,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자 의지할 수단의 공백을 채우고자 기술에 의존한다면, 대신 선택할 해결책은 얼마든지 많다. 정치 참여나 죽음 이후에도 계속 결실을 볼 삶을 고려할 수 있다. 대중의 아편과 같은 존재인 종교는 항상 존재한다. 현존하는 의약품의 전체 범위와 함께 고통에 더 둔감해지면서 죽음을 향한 여정 속도를 높이는 실제 아편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을 수단으로 선택할 수 있다.

여전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맞서고자 한다면, 최고의 해결책은 죽음 자체가 아닌 더 많은 삶의 경험을 위해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다. 위크록 사용자 대부분 오늘날 성인이 죽음을 추상적이면서도 먼 일이라고 생각하는 시기인 20대 혹은 30대라는 점이 전혀 놀랍지 않다. 사실, 사연자도 20대나 30대라고 확신한다. 머지않아 사연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른 순간에 신체가 망가지기 시작할 것이다. 갈수록 더 많은 친구의 죽음을 겪게 될 것이다. 인생 중반기의 중요한 순간에 죽음이라는 암울한 계산을 자극하면서 남은 세월과 비교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쩌면 최초로 시간의 유연하지 못하다는 본질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지식은 사실과 통계를 받아들이면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니다. 디지털 상기의 명확한 효용에 저항한다. 살아있는 경험의 즉각성만을 통해 이루어지는 존재 인식이다. 위크록이 인용한 다양한 명언을 남긴 인물 중 한 명인 시인 제인 허쉬필드(Jane Hirshfield)는 ‘현재(The Present)’라는 시에 모든 부분을 명확하게 설명할수록 자신감을 잃게 된다는 경험이라며, 마침내 삶의 취약성을 어떻게 느꼈는지 작성했다. 허쉬필드는 “죽음이라는 망이 얼마나 훌륭한가. 어쩌면, 거의 모든 것을 투시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작성했다. 허쉬필드의 표현대로 죽음은 거의 모든 것을 투시할 수 있을 것이다.

클라우디아 남김

** 위 기사는 와이어드US(WIRED.com)에 게재된 것을 와이어드코리아(WIRED.kr)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고다솔 에디터)

<기사원문>
Can Being Reminded of My Death Improve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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