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英 국기 집착, 한 가지 위험 숨기고 있다
상태바
英 국기 집착, 한 가지 위험 숨기고 있다
연구를 통해 국기 사용이 증가하면, 사회적 통합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By AMIT KATWALA, WIRED UK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테러 공격이 발생하고 몇 주 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곳에서 미국 성조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성조기를 미국 전역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테네시주 시골 마을부터 맨해튼 시내까지 어디든 창문에 성조기가 걸려 있는 것은 물론이고, 차량 범퍼에도 성조기 스티커가 붙어있었으며, 가슴에 성조기 배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여러 설문 조사를 통해 미국인 3/4이 9.11 테러의 후유증을 집안과 차량, 그리고 자신에 신체에 성조기를 부착하며 대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영국에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다. 대중영합주의자 사이에서 급격히 증가한 애국심이 주된 원인이지만, 집권 여당인 보수당이 협동하여 펼치는 듯한 노력도 그 부분적인 이유이다. 유니언 기는 올림픽 기간이나 런던 중심가의 특정 관광지를 돌아다닐 때나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유니언 기는 정부 청사 건물에 걸린 채로 펄럭이며, 일시적으로 사용된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의 260만 파운드의 가치를 지닌 브리핑 룸의 배경을 이루기도 한다. 맷 핸콕(Matt Hancock) 보건부 장관이 조만간 허가하기만 한다면, 유니언 기는 자금 지원이 부족한 병원의 지붕에도 자랑스럽게 걸려있게 될 것이다. 유니언 잭은 각 정부 부처 장관이 자신의 집무실이나 자택에서 영상 인터뷰를 할 때, 장관의 뒤에 전략적으로 걸려있다. 그리고, 보리스 존슨 총리는 90만 파운드를 투자해, 전용기 꼬리 부분을 유니언 기로 장식했다. 얼토당토않은 내용의 대화가 오간 의회 위원회 청문회에서 어느 한 보수당 의원이 BBC 심의관에게 BBC 기업 연간 보고 당시 유니언 기가 없었던 이유를 질문한 일도 있었다.

국기 노출의 심리적 효과를 연구한 네바다대학교 사회 심리학자 마르쿠스 케멜메이어(Markus Kemmelmeier) 박사는 “정부가 대중에게 무언가를 말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영국은 현재 국가 차원의 후유증 2가지를 겪고 있다. 하나는 외부 요인 때문에 발생한 후유증이며, 다른 하나는 영국이 자초하여 발생한 것이다. 유니언 기 사용은 국가 단합을 호소하는 요소이며, 보수당 정권은 대중에게 영국이 단결됐다는 확신을 심어주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니언 기 사용의 상징적 의미는 강력하며, 심리학 연구는 국기 사용이 증가하는 추세는 실제로 사회적 통합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결과를 제시한다. 케멜메이어 박사는 “국기는 매우 교묘한 수단이다. 간접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라는 말을 할 때, 항상 그에 소속되지 않는 이들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사진=Unsplash]
[사진=Unsplash]

수십 년간 이루어진 연구에서 국기와 같은 상징을 단순히 특정 집단에 배정하기만 하는 일이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16년, 심리학자인 섀넌 칼라한(Shannon Callahan) 박사와 앨리슨 레저우드(Alison Ledgerwood) 박사가 공개한 연구는 많은 사람이 유니언 기를 내거는 집단 구성원을 온화하지 않으면서 더 위협적으로 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애버딘의 로버트고든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는 “꾸준히 같은 모습이 등장한다. 국기는 내부에 소속된 이들의 유대감을 형성하나 외부인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라고 작성했다.

스미스 교수는 인터뷰를 통해 타인이 국기를 내거는 이들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사실을 확인한 여러 개의 초기 연구를 지목했다. 일례로, 1950년대에 진행된 로버스 케이브 실험(Robbers Cave experiment)은 10대 소년 22명을 2가지 집단으로 나누어 서로 상대 집단을 혐오하도록 했다. 스미스 교수는 “실험에 참가한 소년이 서로 사회관계를 형성한 한 가지 방법은 그룹명을 지정하고 깃발을 만든 것이다. 공격적인 행동을 하면, 상대 집단 무리는 서로의 깃발을 불태웠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여러 가지 놀라운 실험 결과를 보면, 단순히 깃발이 있는 것만으로 분열이 심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08년에 이루어진 어느 한 연구는 15밀리초 간 연맹 깃발이 등장했을 때, 백인 피실험자는 중립적인 상징을 지닌 다른 후보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투표할 의사가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비슷하게 독일에서 진행된 또 다른 연구에서는 국기를 노출하면, 이민자에 대한 선입견이 증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1998년, 케멜메이어 박사와 미시간대학교 데이비드 윈터(David Winter) 박사는 실험 참가자를 성조기가 벽에 걸려있는 방 혹은 성조기가 없는 방에 있도록 한 뒤, 애국심과 민족주의가 증가했는지 물어보았다. 단순히 국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민족주의 정도가 증가했으나 애국심은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기는 애국심을 고취시키지 않았으나 타인을 상대로 우월감만 느끼게 했다. 이러한 효과는 매우 놀라울 정도로 끊임없이 발생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성조기에 단 한 차례 노출된 이가 8개월 뒤, 지지 정당을 공화당으로 바꾸게 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영국은 아직 미국과 같은 상황까지 도달하지는 않았다. 케멜메이어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정확한 효과는 개인이 어떤 집단에 소속해, 특정 깃발을 지니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대다수 연구가 별과 줄무늬로 구성된 성조기를 국기로 사용하며, 매일 아침 등교 전 아이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며 자라는 미국에서 진행됐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애국심이 더 강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는 것도 미국인의 국가 자부심을 일으킬 수 있다.)

유니언 기는 영국에서 많은 사람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을 모두 포괄하는 국기보다는 네 지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느끼게 할 수 있는 약간은 기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케멜메이어 박사는 “유니언 기가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한다. 또, 특정 유형의 양극화 문제도 있으리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국기는 상징적으로 특정 정치적 견해와 관련을 지닌 대상이 되었다. 과거, 잉글랜드 국기와 함께 발생한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SNS에서 유니언 기는 브렉시트부터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까지 모든 것에 대한 견해를 빠르게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또, 단순히 유럽연합 깃발을 노출하기만 하면, 유니언 기를 내건 것과 반대되는 세계관을 지닌 것을 나타낸다.

물론, 영국 정부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 정부는 하나의 배너로 국가를 통합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국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정부와 같은 견해를 지닌 지지 세력임을 암시하는 용도로도 사용한다. 이는 외지인을 비난하도록 하는 분열된 정치로 모든 이를 대변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 상징에 개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종차별주의와 혐오를 부추기고는 분열된 정치와 그 때문에 발생한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척하는 모호한 내용을 보도한다.

이전에도 비슷한 전략이 펼쳐졌다. 케멜메이어 박사는 “미국은 주로 우익 세력이 미국의 특정한 모습을 주장하고 사실임을 강요하며 보여주는 데 사용했다는 뚜렷한 추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진정한 애국자이며, 당신은 애국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좌익 세력은 국기를 사용한 애국심 과시를 중단했다. 실제로 국기를 사용하는 행위로 우익 세력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단 한 차례 국기를 노출하기만 해도 타인에 대해 특정 태도를 지니게 되는 효과를 나타낸 연구 결과와 함께 존재만으로 분열된 관점을 나타내기만 하는 국기와 같은 상징을 지닌 국가에 우려스러운 전망을 시사한다. 그러나 연구와 함께 더 희망적인 교훈을 얻기도 했다. 케멜메이어 박사는 “국기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 민족주의라는 공격적인 성향으로 향하도록 이끌기도 하지만, 국기의 의미가 민족주의를 지니도록 해서는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국기는 무언가 잃어버린 것을 회복할 수도 있지만, 위험한 위치로 나아가 일부 집단에게는 위험한 상징이 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며 사회적 지위에 미치는 위험을 감수할 의지를 지닌 대중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케멜메이어 박사는 “일종의 사회적 딜레마라 할 수 있다. 개인의 결과는 나머지 모든 사람이 하는 행동에 따라 나타난다”라고 말했다.

한 가지 잠재적인 전략은 유니언 기를 유럽연합 깃발, 소수 집단 권리 옹호 깃발 등 다른 상징적 의미를 지닌 깃발과 함께 내거는 것이다. 이는 소수 세력이 이미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부분이지만, 유럽인이면서 영국인임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혹은 성 소수자인 영국인일 수도 혹은 흑인이면서 영국인일 수도 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 역사적으로 상징적 의미가 변하는 순간이 발생할 수도 있다. 베트남전 당시 성조기는 저항의 상징이 되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세 속에서 승인된 2021년 하계 올림픽에서 영국 국가대표 선수라면, 출신 배경과 신념을 떠나 누구나 유니언 기를 어깨에 두를 것이다. 2012년 올림픽 당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강력하면서 포괄적인 비전을 지닌 영국을 나타낸 것과 같다.

영국은 과거처럼 국기가 정치적 분열과 관련이 없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케멜메이어 박사는 “누군가가 캠페인을 펼쳐, 국기의 상징적 의미를 회복시키고 특정 아이디어와 함께 국기의 관련성을 형성할 수 있다. 가능한 일이지만,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 위 기사는 와이어드UK(WIRED.co.uk)에 게재된 것을 와이어드코리아(WIRED.kr)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고다솔 에디터)

<기사원문>
The hidden danger of the UK’s flag obsession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RECOMMEN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