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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NA, 과학계에서 외면받다가 코로나19 퇴치제로 주목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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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NA, 과학계에서 외면받다가 코로나19 퇴치제로 주목받다
카탈린 카리코 박사의 mRNA 치료 연구는 수십 년간 동료들에게서 외면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코로나바이러스 주요 백신 2종의 중심에 우뚝 섰다.
By DAVID COX, WIRED UK

1995년은 카탈린 카리코(Katalin Karikó)에게 가장 성공적이지 못한 시기었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생화학자였던 카리코 박사는 지난 20년간 생명체의 블록을 형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 중 하나인 mRNA를 치료학의 새로운 범주로 만드는 데 몰두했다.

카리코 박사가 연구를 하던 시기 중 절반 이상은 별다른 진전을 거두지 못했다. 무수히 많은 승인 신청이 거부됐으며, 뉴욕 벤처 투자가, 독립 기업 등에게서 연구 자금을 육성하기 위한 시도도 결실을 얻지 못했다. 그는 “처음에는 자금을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다시 연락했을 때, 연락을 받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수석 연구원의 인내심이 사라졌다. 카리코 박사가 자신의 연구를 위해 모으는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에 절망감을 느껴,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측은 카리코 박사에게 절망적인 선택권을 주었다. 카리코 박사는 연구소를 떠나거나 직위 강등을 당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mRNA로 여러 만성 질환 치료를 위한 새로운 백신과 의약품을 만들겠다는 카리코 박사의 꿈의 여정이 끝난 듯했다.

34년 전, 1961년 여름에 발생한 과학적으로 흥분된 일로 떠들썩한 와중에 mRNA 발견 사실이 공식 발표됐다. 미국과 유럽 연구원들은 10년 넘게 DNA가 단백질 생성 과정에 관여하는 과정을 정확히 설명하기 위한 조사를 해왔다. 단백질 생성 과정이 모든 생명체의 성장과 기능에 매우 중요한 아미노산의 긴 서열이기 때문이다.

mRNA가 그 정답인 것으로 밝혀졌다. mRNA가 디지털 테이프 리코더 역할을 하면서 세포핵에 있는 DNA의 지시사항을 반복적으로 복사하고, 단백질을 생성하는 구조인 리보솜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처럼 mRNA의 핵심 역할이 없었다면, DNA는 그저 쓸모없는 화학 물질의 배열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각에서는 mRNA를 ‘생명체의 소프트웨어’라고 부른다.

과학자 9명이 mRNA의 발견에 이바지했을 당시에는 단순히 기본적인 생물학적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과학계는 인체에서 셀룰러 메시지 전송 시스템과 같은 역할을 하는 mRNA를 의약품 제조 공장에서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다.

실험실의 페트리 접시에서 설계되고 생성돼, 나노입자라는 매우 미세한 구성을 통해 환자의 세포로 전달되는 인공 mRNA는 인체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지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전 세계 연구팀은 mRNA를 세포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바이러스 침투에 싸울 수 있는 특정 항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미래의 백신을 생성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다른 연구원들은 mRNA가 면역체계의 암 조직 인식 및 파괴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사진=Freepik]
[사진=Freepik]

카리코 박사는 1976년, 학부생이던 시절 자신의 고국 헝가리의 세게드 대학교에서 강의를 듣던 중, 처음으로 mRNA를 백신 개발에 활용하는 방안을 공개했다. mRNA에 흥미를 느낀 그는 박사학 학위 과정을 시작하고, mRNA가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데 사용할 방법을 연구했다. 유전자 치료 개념이 성공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카리코 박사는 mRNA가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항상 환자 대부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유전자가 아니라 통증과 고통을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과 같은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 때문에 mRNA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당시 카리코 박사가 생각한 것과 같은 매우 야심찬 계획을 이루기 위한 기술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mRNA와 세포를 분리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인공 mRNA를 생성하는 방법은 확실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1984년, 미국 생화학자 캐리 멀리스(Kary Mullis)가 극소량의 DNA의 양을 늘리는 기법인 유전자 증폭 기술(PCR)을 개발해, 유전자에 대해 상세히 연구할 수 할 수 있었다. 1989년, 다른 과학자들이 PCR을 이용해 약간의 손상에서 mRNA를 생성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DNA 서열을 증폭하고, RNA 중합 효소라고 알려진 효소를 이용해 DNA 서열에서 mRNA를 생성하는 것이다. 카리코 박사는 “mRNA를 연구하는 과학자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발견이었다. 갑자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mRNA 연구 호황이 이루어지자, 카리코 박사는 헝가리를 떠나 미국으로 갔다. 1985년, 카리코 박사는 템플대학교에 취직해, 남편과 2살배기 딸과 함께 900유로를 봉제해 넣은 테디베어를 챙겨 필라델피아로 이주했다. 그리고 카리코 박사는 차를 암시장에 판매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카리코 박사의 아메리칸 드림은 쓴맛을 보았다. 4년 뒤, 카리코 박사는 어쩔 수 없이 템플대학교에서 인근의 펜실베이니아대학교로 이직해야 했다. 당시 카리코 박사는 자신을 강제 추방시키려던 상사와 언쟁을 벌였다. 그리고,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혈관 이식을 향상할 수 있는 mRNA 치료 연구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단백질을 생성해 새로 이식된 혈관이 멀쩡하게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카리코 박사의 mRNA 초기 연구 일부가 서서히 희망을 잃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이 mRNA 생성 방법의 문제점을 해결했지만, 새로운 장벽이 떠올랐다. 동물에게 mRNA를 주입했을 때, 면역 체계에서 심각한 염증 반응이 일어나고 바로 사망했다. 인간을 대상으로 mRNA 주입 실험을 한다는 생각은 불가능했다.

매우 심각한 문제였지만, 카리코 박사는 이를 해결하기로 확고히 결심했다. 그는 어느 한 크리스마스와 새해 전날, mRNA 실험을 하고 승인 신청서를 작성한 때를 떠올렸다. 그러나 다른 과학자 대부분이 mRNA 분야에 등을 돌렸다. 마찬가지로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수석 연구원마저도 mRNA 자체가 실용적으로 쓸모없다는 사실을 입증해보였으며 카리코 박사가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했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측은 카리코 박사에게 mRNA 연구를 계속한다면, 명문 대학에서의 교수직 지위를 잃고 연봉이 많이 삭감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카리코 박사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최후통첩을 받았던 시기가 매우 끔찍한 시기였다. 당시 암 진단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두 차례 수술을 두고 있었다. 당시 남편은 영주권 취득을 위해 헝가리로 돌아갔으나 비자 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헝가리에 남아있어야 했다. 남편은 이 때문에 6개월간 헝가리에 있어야 했다. 매우 힘든 시기였다. 이때,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최후통첩을 받았고, 암 진단도 받았다”라고 말했다.

카리코 박사는 수술을 이어가는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두고 평가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에 남아 자신의 지위가 강등되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mRNA 연구를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이 덕분에 카리코 박사는 자신의 경력과 과학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다줄 만남을 갖게 됐다.

1997년,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면역학자 드류 바이스만(Drew Weissman) 박사가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 왔다. 과학 논문을 온라인에 게재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훨씬 전의 일이다. 따라서 최종 연구를 읽어볼 유일한 방법은 논문을 복사하는 방법뿐이었다. 바이스만 박사는 “연구실 부서 내에서 카리코 박사와 같이 복사기 사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때, 카리코 박사와 대화를 하면서 서로 연구한 내용을 비교해보았다”라고 기억을 회상했다.

카리코 박사의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내 학문적 지위가 낮은 상태였지만, 바이스만 박사가 카리코 박사의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둘의 협력 관계가 시작됐다. 카리코 박사는 “바이스만 박사의 도움 덕분에 낙관적인 전망을 갖게 되었고, 연구를 이어 나갔다. 당시 내 월급이 내 옆자리에 있던 기술자보다 적었다. 그러나 바이스만 박사가 도움을 주어, 이전처럼 장벽을 마주하지 않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카리코 박사와 바이스만 박사는 안전하게 주입될 수 있는 mRNA 형태의 핵심이 RNA의 유전학 코드의 문자인 뉴클레오시드가 면역 체계를 촉진해, 이를 다른 요소로 바꾸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2000년대 초반, 카리코 박사는 연구 전반에 걸쳐 RNA의 유전학 문자 중 하나인 우리딘이 특정 면역 리셉터를 촉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카리코 박사가 오랫동안 찾아다닌 결정적인 정보였다.

2005년, 카리코 박사와 바이스만 박사는 특정 목적으로 mRNA를 수정한 사실을 발표하는 논문을 게재했다. 이 연구에서 우리딘과 똑같이 보이지만,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분자인 아날로그 분자로 우리딘을 대체했다. 생물학적으로 매우 훌륭한 속임수였으며, 효과가 있었다. 실험용 쥐에 변형 mRNA를 투입했을 때, 쥐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카리코 박사는 “바이스만 박사가 ‘이럴수가, 면역 반응을 유발하지 않았어!’라는 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그때가 mRNA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순간이며, mRNA를 백신과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 그래서 연구 논문을 게재하고 특허를 출원한 뒤 기업을 설립했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를 초청해, mRNA 연구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게 일부 과학자가 카리코 박사와 바이스만 박사의 연구에 주목했다. 당시 스탠퍼드대학교 박사후 연구원이었던 데릭 로시(Derrick Rossi)는 연구 논문을 읽고, mRNA에 관심을 두게 됐다. 2010년, 로시는 하버드대학교와 MIT 교수 여러 명과 함께 모더나라는 바이오테크 기업을 공동 설립했다. 변형 mRNA를 이용해 백신과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특수한 목적으로 설립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모더나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경쟁의 선두에 서 있으며, 약 350억 달러(38조 3,145억 원)의 가치를 지닌 기업이 됐다. 3상 임상시험에서 mRNA 기반 백신의 효과가 94%라는 사실을 발표한 덕분이다.

그러나 전 세계가 mRNA에 다시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다. 로시가 모더나를 창립했을 때, 카리코 박사와 바이스만 박사도 자신들의 연구 내용을 기반으로 간신히 상업화하는 데 성공하고, 바이오앤 테크라는 독일의 소기업에 기술 사용 권한을 주었다. 5년간의 시도와 실패 끝에 얻은 성과이다.

모더나와 터키계 기업가 우구르 사힌(Ugur Sahin) 박사가 설립한 기업 바이오앤 테크 모두 암 면역 치료, 심혈관 질환 및 대사 질환이라는 수익성이 높은 분야에 주목했다. 카리코 박사와 바이스만 박사의 연구 결과 덕분에 환자에게 mRNA를 안전하게 주입할 수 있게 됐다. 1970년대 당시 mRNA 연구 목표가 다시 가능성을 보이게 됐다.

백신 개발도 곧 실현될 것으로 보였다. 2017년, 모더나는 지카 바이러스 백신 후보군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바이오앤 테크는 화이자와 협력 관계를 체결하고, 인플루엔자용 mRNA 백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백신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할 대규모 자금 지원은 없었다.

2020년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유례없는 규모로 백신이 필요해지자 mRNA 백신이 기존 백신 접근 방식보다 확실히 유리했다. 그러나 사망하거나 비활성화된 형태의 바이러스로 면역 반응을 생성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2020년 4월, 모더나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프로그램 추진 속도를 높이도록 미국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iomedical Advanced Research and Development Authority)에서 4억 8,300만 달러(528억 4,986만 원)를 지원받았다.

카리코 박사는 바이오앤 테크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2013년,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1995년에 강등된 교수진 지위 복구 거부를 받고, 바이오앤 테크의 상무 자리를 제안받았다. 카리코 박사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회의를 거치고, 교수진 자리를 유지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에, 펜실베이니아대학교를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학교 측은 ‘바이오앤 테크는 웹사이트도 없는 회사’라며 비웃었다”라고 말했다.

이제 바이오앤 테크는 지난달, 화이자와 공동 개발한 mRNA 코로나19 백신의 효과가 95% 이상이라는 사실을 발표한 뒤 유명한 기업이 됐다. 모더나와 함께 바이오앤 테크는 2021년 말까지 전 세계에 백신 수십억 개를 공급할 예정이다.

카리코 박사에게 있어, 바이오앤 테크의 3상 임상시험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매우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기뻐서 뛰고,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mRNA 백신이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역경을 겪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mRNA 연구의 가치를 설득하는 데 큰 어려움에 부딪혔지만, 카리코 박사는 여전히 자신의 mRNA 기술이 전 세계 수십억 명의 목숨을 바꾸고 코로나19 종료에 도움이 된다는 부분을 이해하고자 한다.

카리코 박사는 “항상 많은 사람을 돕고, 임상 의학에서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이것이 나에게 동기 부여가 됐고, 항상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사람을 도울 것이라고는 절대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내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이라는 성공 신화에 한몫을 했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다”라고 말했다.

** 위 기사는 와이어드UK(WIRED.co.uk)에 게재된 것을 와이어드코리아(WIRED.kr)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고다솔 에디터)

<기사원문>
How mRNA went from a scientific backwater to a pandemic crus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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