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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가 봉쇄 지원금으로 치어리더 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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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가 봉쇄 지원금으로 치어리더 팀을 만들었다
국가 봉쇄 기간 동안 친구들과 나는 3,000파운드를 모아 성인 전문 치어리더 팀을 만들었다.
[사진=UNSPLASH]
[사진=UNSPLASH]


By JOANNA HAEGER, WIRED UK

나는 어렸을 때 체조선수였다. 내 인생에는 학교를 마치고 곧장 체육관으로 향할 때가 있었는데, 때로는 일주일에 16시간까지 훈련을 했지만 14살 때 그만두었다. 여러 해 동안 나는 다른 스포츠에 손을 댔지만, 리즈 대학교에 가서야 비로소 내가 즐겨 하는 팀 스포츠인 치어리딩을 발견했다.

 

정말 멋져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브링잇온(Bring It On, 미국의 치러리딩 영화)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치어리딩팀에 합류한 날부터 반했다. 체조와는 달리 일주일에 서너 시간만 훈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잘했다. 우리는 대회에서 우승했고, 몇 년 연속 전국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것은 나의 대학 경험을 재미있고 보람있게 만들었고, 우리 팀은 진정한 가족이었다. 나는 대학에서 치어리딩을 통해 레이스와 엠마와 같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을 만났다. 졸업 후 런던으로 건너가 여러 선수단에서 경쟁적인 수준의 응원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실제로 같지 않았다. 영국의 많은 올스타 치어리더 팀들은 12세에서 30세 사이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학에서 응원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서 공중에 던져지는 사람으로 치어리더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난 정말 그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선배 팀에 있을 때, 나는 때때로 좀 더 유연한 아이들과 경쟁하는 것이 싫었고, 게다가 팀 전체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밤에 외출해야 한다는 것이 더 싫었다.

 

나는 첫 번째 국가 봉쇄가 발표되기 1~2주 전에 치어리더 대회에 나갔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모두 공연 준비를 하기 위해 옷을 차려입고 있었고, 그후 나라가 봉쇄됐다. 정말 이상했다. 하지만 그 후, 나는 갑자기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엠마와 그레이스와 함께 런던 왕조 응원단(London Dynasty Cheer)이라고 불리는 치어리더 팀을 발족시키기로 했다.

 

곧바로 우리는 사실을 직시해야 했다. 치어리딩은 정말 값비싼 운동이고, 나는 돈을 많이 모아본 적이 없다. 평일에는 점심을 직접 만들지 않아서 외식만 해도 하루에 6파운드를 쓰곤 했다. 그리고 가끔 커피나 아침 식사를 팀원들에게 대접했다. 이스트 크로이돈에서 직장으로 통근하는 것은 내 저축을 또 방해했고 주말마다 거의 밖에 나가곤 했다.

 

그런 점에서 봉쇄는 축복이었다. 우리는 각각 출퇴근 하지 않고 한 달에 300파운드를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예정되어 있던 세 번의 여행이 모두 취소되어 고맙게도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6월 동안 우리는 총 3천 파운드를 절약했다. 치어리더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려는 꿈을 위해 그것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돈이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나는 치어리딩 코치를 별로 해오지 않았지만 다른 팀원들은 그들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싶어 했다. 치어리딩 코치 코스로 다 합쳐서 950파운드를 벌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공중제비하길 원한다면, 400파운드가 더 드는 에어 트랙을 사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스피커 비용, 응급처치 코스, 스포츠 홀 대여비보험 그리고 웹사이트 구축 비용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봉쇄로 모은 돈이 아니었다면 팀을 꾸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런던 왕조 응원단을 어떻게 시작하고 싶은지 3개월 동안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친구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 웹사이트와 유니폼을 디자인하는 것의 비용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매주 그레이스, 엠마, 그리고 나는 줌으로 서로 마감일을 정하고 지난주에 우리가 달성한 것을 토론하곤 했다. 예를 들어, 우리 중 한 명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생 강좌의 소유권을 가져갔다. 그리고 인스타그램 프로필을 만들었다. 우리는 많은 준비를 하면서 626일에 위대한 발표를 하기로 했다.

 

제한이 완화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모두 야외에서 만나 화보 촬영을 했다. 우리는 출시일과 몇 주 후에 소셜 미디어에 올릴 좋은 사진들을 모을 계획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출시 당일에 샴페인을 터뜨리고 공식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런던 왕조 응원단 소식이 들불처럼 번졌다. 각자 몇 년씩 응원단에 몸담았던 우리에게는 그 소식을 퍼트리는 데 도움을 준 인맥과 친구들이 많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다. 9월 예정된 무료 체험이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가입이 되어 있었다.

 

초창기 무료 체험은 너무 많은 신청자가 몰렸기 때문에 우리는 세 번의 체험을 더 열고 더 큰 스포츠 홀을 대여해야만 대유행 상황에서의 진행이 가능했다.

 

무료 체험에 사람들은 그냥 체험만 해보려고 올 것이라는 우려가 항상 있었다. 하지만 이달 말에 정식으로 훈련을 시작했을 때 체험자 90명 중 75명이 다시 돌아왔고 모두 정식회원으로 가입했다.

 

무료 체험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치어리딩을 시도하는 영상을 보냈다. 우리에게는 선수들이 합류할 수 있는 두 개의 다른 팀이 있다. 전문적으로 치어리딩을 하고 싶은 선수들로 구성된 올스타급 경쟁팀이 있고 취미 훈련만 하고 싶은 선수들을 위해 또 다른 팀을 구성했다. 당초 2월에 출전할 계획이었지만 2차 대유행으로 훈련할 수 없게 되면서 시즌이 조금 늦어진 지금 가상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처음부터 우리는 대학 치어리더팀 경험을 스포츠팀 그 이상으로 지원 시스템과 사회 그룹으로서 재현하고 싶었다. 두 번째 국가 봉쇄 기간 동안 우리는 영화 감상의 밤과 토요일 아침 커피 모임을 조직했고 몇 개의 WhatsApp 그룹을 만들어 연락했다.

 

지금은 줌에서 무료 교육을 하고 있으며, 영국 전역의 팀들이 보통 공연을 위해 모이는 20217월 대회 시즌에 대비하여 준비하고 있다. 올 시즌은 상황이 좀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싶다. 남은 기간의 비용을 선수들에게 환불해야 주어야 했지만, 우리가 벌어들인 작은 수익과 이 두 번째 봉쇄는 더 많은 돈을 절약할 기회를 주고 있다. 그래서 다시 훈련을 재개할 날을 위해 경쟁 응원 음악을 만들고, 텀블링 블록과 치어리딩 롤 매트 같은 더 많은 장비를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내년이 빨리 왔으면 좋겠고, 무슨 일이 있어도 신나는 세상을 위해 치어리딩을 준비할 것이다.

 

이 기사는 국가 봉쇄로 인해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탐구하는 새로운 WIRED 시리즈의 일부분이다. 지난번에는 여분의 시간을 이용해 가슴 모형을 조각하여 돈을 버는 재스민의 이야기를 다뤘다.

** 위 기사는 와이어드US(WIRED.com)에 게재된 것을 와이어드코리아(WIRED.kr)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배효린 에디터)

<기사원문>
I used my lockdown lunch money to launch a cheerleading team

와이어드 코리아=Wired Staff Reporter huyrin1@spo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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