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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스페이스오디티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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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스페이스오디티를 위하여
[인터뷰]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

음악을 좋아했던 초등학생은 매주 공책에 '나만의 차트'를 만들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1위부터 20위까지 차곡차곡 적으며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하루는 친구들에게 공책을 들키고 말았다.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음악이 싫지는 않았다. 하루종일 음악을 들으며 미래를 꿈꿨다. 미디어 스타트업 스페이스오디티는 그렇게 시작했다.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는 '이슬라이브'와 '세로라이브' 기획자로 유명하다. 이슬라이브는 가수들의 취중 라이브라는 콘셉트로 시청자들에게 높은 몰입감을 전달했다. 스마트폰 화면이 꽉 채워지게 영상을 세로로 구성한 세로라이브도 MZ세대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김 대표는 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자 야심차게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2017년 스페이스오디티를 설립했다. 아티스트를 모아 큐레이팅을 진행하고 단독 음반도 냈으며 전시도 진행했다. 최근에는 아이돌 팬들을 위한 앱 '블립'도 출시했다. 

◆"무슨 일을 하는 회사에요?"

스페이스오디티는 특이한 회사다. 음반은 냈지만 소속 가수는 없고, 다양한 굿즈를 만드는 브랜딩 회사지만 소속 디자이너도 없다. 이전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이다. 김 대표는 "이런 질문 정말 많이 받았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스페이스오디티를 '아티스트와 팬 모두에게 다양한 경험을 만들어주는 회사'라고 정의했다. 

스페이스오디티의 콘텐츠는 아티스트와 팬에게 신선하게 다가간다. 헤이즈를 주제로 한 전시·음감회 '스펙트럼 오브 헤이즈'는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든 시도였다. 케이스위스와 함께 워너원 여름 영상을 제작하며 아티스트와 팬의 접점을 넓혔다. MBC라디오 '김이나의 밤편지' 애청자를 위한 굿즈를 제작하기도 했다. 

스페이스오디티는 음악 콘텐츠를 제작해 수익을 내기도 한다. 연애플레이리스트에 삽입된 김나영의 '그럴걸', 폴킴의 '있잖아'는 물론 멜로망스의 '짙어져', 육성재 '고백', 빈지노 'Blurry' 등을 기획했다. 음원 브랜드와 협업하며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지금까지 스페이스오디티가 기획한 음원은 50개 이상이다. 

[사진=스페이스오디티]

팬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그 매개체는 바로 기술이다. 스페이스오디티는 지난해 팬덤 연구소 블립을 설립했고, 케이팝 팬덤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케이팝 레이더도 오픈했다. 블립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파고드는 방식이라면 케이팝 레이더는 유튜브에 올라온 공식 뮤직비디오 재생 수와 SNS 구독자 증감 추이를 참고해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다. 김 대표는 "다만 팬덤쪽은 아직 흑자가 아니며 수익모델을 전개하는 던 다음 단계"라고 설명했다. 

"케이팝 팬덤은 많아요. 그런데 팬덤이 얼마나 큰지 객관적으로 얘기해주는 자료는 없어요." 김 대표는 케이팝 레이더를 만들게 된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음반 판매량이 팬덤의 크기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인회나 굿즈를 위해 수백장의 음반을 구매하는 팬도 많기 때문이다. 스트리밍을 기계적으로 돌리는 팬이 많아 음원차트 순위도 대표성이 없다. 김 대표는 "SNS 팔로워 수, 유튜브 영상 재생 수 등 여러 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별을 관측하는 방법

케이팝 레이더는 마치 밤 하늘의 별을 보는 것처럼 팬덤을 관측한다. "우주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보며 이동 경로를 기록하잖아요. 우리도 멀리 있는 수많은 별을 기록합니다." 케이팝 레이더가 관측하는 아이돌 팀은 무려 2000팀 이상이다. 스페이스오디티는 정보를 트래킹하고 카테고리별로 분석한다. 팬덤의 크기 변화도 추적한다. 

케이팝 레이더에 사용되는 방식은 웹 페이지 크롤링과 API를 이용한 데이터 수집이다. 먼저 파이썬 등 프로그램을 이용해 웹페이지에서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인터넷 브라우저에 기록된 정보를 크롤링한다. 데이터는 주로 팬클럽과 커뮤니티에서 가져온다.

두 번째는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API를 이용하는 것이다. API란 특정 프로그램의 데이터에 다른 이용자가 접근할 수 있게끔 정해둔 통신 규칙을 말한다. 인증키를 이용해 접속하고 원하는 데이터를 크롤링할 수 있다. 케이팝 레이더는 트위터, 유튜브, 네이버 등에서 데이터를 얻는다.

크롤링하는 데이터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해시태그, 키워드, 언급량 중심으로 SNS에서 모은 데이터다. 일정한 시간대에 자동으로 수집되는 일반 데이터도 있다. 후자의 경우 '좋아요'가 몇 개인지, 구독자 수는 몇 명인지 등 정량적인 데이터가 대부분이다.

모든 과정을 자동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플랫폼에 케이팝 아티스트만 있는 게 아니며 다양한 변수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플랫폼에 나타나는 해외 아티스트는 사람이 직접 필터링한다. 새로운 아티스트가 시장에 등장하는 것도 변수다. 팬덤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이런 샘플도 사람이 제거해야 한다.

"음악을 아는 사람들은 왜 갑자기 데이터 수집량이 변화하는지 알아요. 꾸준히 관측하고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만약 혜성이 지구에 부딪힌다면 혜성을 계속 관측해온 과학자들은 언제, 왜 혜성이 지구와 부딪히는지 예측할 수 있어요. 우리도 그런 식으로 케이팝 팬덤을 예측할 수 있어요." 

◆덕후가 만든 앱, 블립

스페이스오디티는 최근 아이돌 팬덤을 위한 앱 블립을 정식 출시했다.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를 선택하면 그와 관련한 모든 소식을 전해주는 앱이다. 다가오는 스케줄은 물론 아이돌의 입사 기념일처럼 특별한 순간도 알려준다. 블립은 '여친짤'이나 공식 SNS에 올라온 사진들을 모아 보여주기도 한다. 

스페이스오디티는 블립 정식 출시 전 강다니엘,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아이유, 엑소, 트와이스 등 아티스트 6팀을 대상으로 베타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기간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블립을 두고 '덕후가 만든 앱'이라는 평가가 올라오기도 했다. 김 대표는 "너무 좋다"며 "덕후가 덕후를 인정해주는 건 쉽지 않다. 그 얘기를 듣고 눈물이 나려고 했다"고 말했다. 
 

[사진=블립 캡처]

"디시인사이드 트와이스 갤러리 유저들이 다운로드 받으라는 앱 중 저희 앱이 있더라고요. '이건 분명 덕후가 만든 앱이야'라고 소개하는데 정말 기뻤어요. 이후 블립에 몬스타엑스를 열어달라, 잔나비를 열어달라 등 여러 요청이 들어왔어요. 오늘은 비욘세를 열어달라는 요청도 있었어요." 

케이팝 레이더가 망원경이라면, 블립은 현미경이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언제 스트리밍 1위를 할 수 있을지, 신곡은 언제 나오는지 등 눈여겨볼 소식도 자주 올라온다. 앞으로 더 많은 아티스트를 블립에 추가할 계획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하나 딱 정해, 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면모만 들여다보는 현미경과 같은 앱입니다. 좋아하는 것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죠." 김 대표는 비단 케이팝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이 기술을 통해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도 밝혔다. 그는 "기술에 따라 음악의 형태도, 소비 문화도, 생산 문화도 달라졌다"며 "앞으로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더욱 새로운 형태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음악 산업에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용감하고, 한 편으로는 외로운 우주비행사, 즉 스페이스오디티가 아닐까 싶어요." 그는 앞으로도 새로운 산업을 만들 계획이다. 세상의 모든 스페이스오디티를 위하여.

와이어드 코리아=엄다솔 기자 insight@wir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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