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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착안한 ‘드라이브 스루’는 전 세계로 전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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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착안한 ‘드라이브 스루’는 전 세계로 전파됐다
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 “선별진료 성공에 도취 안 돼, 생활 속 방역 ‘혁신’ 필요”
[사진=한희재, 엄다솔]

인천의료원은 인천공항과 차로 30분 정도 떨어져 있다. 메르스, 에볼라 등 신종감염병 의심환자를 많이 만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지난 1월 19일 중국 우한시에서 날아온 중국 여성은 발열 때문에 인천국제공항 검역대에서 우리 병원으로 곧장 옮겨졌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됐다.

당시 나는 중국에서 나오는 논문과 기사를 읽고 코로나19에 대해 들어만 봤을 뿐, 정확히 어떤 질병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환자를 보며 새로운 감염병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지금까지 나온 바이러스와는 전혀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는 그렇게 시작됐다.

◆ 드라이브 스루, 백그라운드 스토리

의학은 상당히 오랫동안 발전한 학문이다. 익히 알려진 질환에 대해서는 치료법이 많지만 코로나19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신종 감염 질환이므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진료를 봐야 했다. 바이러스는 호흡기를 통해 타인에게 전파된다. 의료진은 눈, 코, 입을 잘 가리고 전신보호복을 입은 채 진료와 검사를 해야 했다. 불편하긴 해도 그렇게 입어야만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

환자와 다른 환자 사이의 감염을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병을 진단하러 왔다가 되려 병을 얻어가면 안 된다. 연무질, 재채기 등으로 공기 중에 병균이 떠다니는 ‘에어로졸’을 방지하고자  적절한 환기는 필수다. 공조시설이 잘 돼 있는 환경에서는 1시간에 6~12회 환기한다. 에어로졸이 99.9% 사라지기까지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정도 걸린다.

그런데 2월 말부터 대구의 신천지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대규모 검사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실내 환기 횟수를 갑자기 늘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면서도 환자를 진단하려면 검사를 최대한 많이 해야 하니,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검진을 차라리 밖에서 하면 어떨까? 사고를 전환해 봤다. 밀폐된 공간이 아니니 환기는 문제없을 것이고, 에어로졸이 배출되더라도 공기 중에 희석되니 바이러스가 다음 사람에 전파될 확률도 제로에 가깝다. 불행 중 다행인지 겨울이 끝날 무렵이라 기후 조건도 괜찮았다. 

의료진은 넓은 공터와 운동장처럼 안전하게 검사할 장소를 물색했다. 그리고 환자 정보를 확인하고 문진 및 진찰, 검체 체취, 안내 및 귀가 등 검문 순서를 정했다. 각 단계의 스태프가 걸을 수 있는 길을 확보하고, 차에 탄 사람도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검사 대상자들은 주어진 경로를 따라 운전하며, 드라이브 스루와 같은 방법으로 검사를 받는다. 개인의 승용차는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이다. 탑승자도 검사 대상자이니 차 안이 오염될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 '워크 스루'는 개선 노력이 필요

드라이브 스루의 초안은 내가 만들었지만, 실행에 옮긴 건 내가 처음은 아니었다. 아이디어를 낸 지 이틀만에, 당시 환자가 많이 밀려들었던 대구 권역인 칠곡 경북대 병원에서 운영을 시작했다. 이어 각 지방자치단체와 의료기관이 각자의 상황에 맞게 드라이브 스루를 변형해 운영에 들어갔다. 이후 전 세계의 관심을 받는 검사 방식이 됐다. 형태는 변했지만 그 근간이 된 내 아이디어는 변치 않았다.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선별검사센터를 설계할 때, 걸어 들어오는 검사 대상자를 위한 방법도 함께 떠올렸다. 지금은 ‘워크 스루’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공중전화 부스 같은 곳에 검사 대상자가 들어가면, 검사 대상자와 의료진이 밀폐된 공간에서 벽에 달린 '고무장갑'을 매개로 접촉한다. 

그러데 워크 스루는 야외 검사 만의 장점을 살리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환기 횟수를 늘리고 고무장갑을 소독하더라도 드라이브 스루에 비하면 절차가 번거로워 감염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다행스럽게도 일부 의료기관에서만 사용됐을 뿐 대부분 선별진료소는 적용하지 않았다. 차후  표준화된 시스템을 구축할 때에는 조금 더 안전한 방법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뉴노멀'과 드라이브 스루

팬데믹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물며 일상을 바꿔놓을 것이다. 코로나19는 대부분 경미한 증상에 그친다. 하지만 전염력이 무척 강해 면역력 낮은 누군가 코로나19에 걸린다면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다. 그 누군가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 이웃, 직장 동료가 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될 거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설사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낮은 천장이 있는, 숨이 차는 실내운동은 앞으로 지양하게 될 것이다. 헬스클럽, 태권도, 합기도 등 밀폐된 실내에서 진행하는 운동은 더 그렇다. 움직임이 적고 숨 차지 않는 운동인 요가는 괜찮을 수도 있겠다. 혹시라도 마스크를 쓰고라도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그만두자. 오히려 건강을 해칠수도 있다.

노래를 부르거나 큰 소리를 내는 행위도 금물이다. 노래 연습장, 노래 학원, 무대와 객석이 가까운 공연장이나 클럽 등은 바이러스가 전파되기 쉽다. 노래 대신 악기 연주는 비교적 안전할지도 모른다. 조용히 감상만 한다는 가정 하에.

잦은 접촉이 불가피한 업종들은 아쉽지만 사라질지도 모른다. 사우나, 찜질방, 마사지숍 등의 업종은 개선책도 따로 마련하기 어렵다.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식당도 마찬가지다. 뷔페, 사람들이 줄 서는 맛집, 소리를 지르면서 서빙하는 식당, 왁자지껄 떠들며 맥주잔을 부딪히는 술집, 조그만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은 찻집… 앞으로 추억 속으로 사라질 위기의 장소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과거의 추억과 작별할 준비가 되지 않은 듯 보인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새로운 일상 앞에서 드라이브 스루라는 초기 방역의 성공적 상징물에 너무 취해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는 코로나19를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우리 생활 속 모든 분야에 드라이브 스루 정도의 빠른 변화와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 코로나19와 공존하는 방법을 빨리 찾아내는 국가야말로 앞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주역이 될지도 모른다.

글 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
와이어드 코리아=Wired Staff Reporter wiredkorea@wir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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