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차세대 배터리 소재로 '바이러스'가 쓰일 수 있다
상태바
차세대 배터리 소재로 '바이러스'가 쓰일 수 있다
앤절라 벨처(Angela Belcher) 교수는 ‘자연의 좀비’를 전극 조합에 쓰는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새로운 배터리 개발은 단지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By Daniel Oberhaus, WIRED US

지난 2009년, MIT 생명공학 교수 앤절라 벨처는 당시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단 두 달 밖에 되지 않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작은 배터리를 보여주려고 백악관으로 향했다. 자유국가의 리더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배터리는 많지 않지만, 이건 일반적인 배터리가 아니었다. 벨처 박사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리튬이온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 전극을 만들었는데, 이는 배터리 제조 공정의 독성을 줄이고 높은 성능을 약속하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오바마는 첨단 배터리를 개발하는 데에 20억 달러를 후원하겠다는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고, 벨처의 동전 모양 배터리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보여줬다.

벨처가 백악관에서 배터리를 시연해보인지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바이러스 조합 기술은 빠른 진전을 보였다. 150개 이상의 다른 물질과도 작동하는 바이러스를 만들고, 자신의 기술이 태양 배터리를 비롯한 물질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바이러스로 달리는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그녀의 꿈까지 아직 갈길이 멀지만, 몇 년 간의 노력 끝에 그와 MIT 동료들은 이 기술을 실험실을 벗어나 현실 세계에서 실현시키는 단계에 도달했다.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아주 작은 ‘자연의 좀비’,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다. 모든 생물의 특징인 DNA로 가득 차 있지만, 숙주가 없이는 번식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물이라는 정의에 다소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벨처가 증명했듯, 바이러스의 이러한 특성은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보다 나은 에너지 밀도, 수명 그리고 충전률이 높아진 배터리를 만드는 나노 엔지니어링에 쓰일 수 있다.
 
[사진=Unsplash]
[사진=Unsplash]

존스 홉킨스 응용물리학 연구소의 첨단배터리 선임 연구원 콘스탄티노스 제라소풀로스(Konstantinos Gerasopoulos)는 “배터리 분야에서는 배터리 전극용 나노구조 형태의 물질 탐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기존의 화학 기법으로 나노 물질을 만들 수 있는 몇 가지 전통적인 방법이 있다. 바이러스와 같은 생물학적 물질을 사용했을 때의 이점은 이미 '나노'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배터리 재료의 합성을 위한 천연 템플릿이나 비계(Scaffold)와 같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의 도움 없이 무기 물질로 유용한 구조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은 자연 속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 벨처가 가장 좋아하는 예시는 전복 껍데기인데, 가볍고 튼튼한 나노 크기로 만들어진 구조를 갖고 있다. 수천만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전복은 DNA가 미네랄이 풍부한 해양 환경에서 칼슘 분자를 추출해 몸 속 질서정연한 여러 층의 단백질을 생산했다. 또 “새로운 물질을 만들기 위해 생물학적 도구를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벨처가 선택한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로 복제되는 시가(cigar)모양의 바이러스인 M13 박테리오파지다. 비록 나노공학에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벨처 박사는 그 유전 물질이 조작하기가 쉽기 때문에 좋다고 말했다. 전극 생산을 위한 바이러스를 모을 때, 벨처는 조작하려는 물질에 바이러스를 노출시킨다. 일부 바이러스의 DNA에서 자연적으로 일어나거나 조작된 돌연변이가 그 바이러스를 물질에 달라붙게 한다. 그러면 벨처는 이 바이러스를 추출해 박테리아를 감염시키는데, 이렇게 하면 수백만 개의 동일한 바이러스가 복제된다. 이 전체 과정은 계속해서 반복되며, 매번 반복될 때마다 바이러스는 더욱 정교해진 ‘배터리 설계자’가 된다.

벨처의 유전공학 바이러스는 배터리의 음극과 양극을 구분할 수 없지만,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다. 그들의 DNA는 단순한 일을 하도록 프로그램돼 있으나 수백만 개의 바이러스가 같은 일을 동시에 하면 사용 가능한 물질을 생산해낸다. 예를 들어, 유전자가 변형된 바이러스가 자기 몸 표면에 단백질을 배출하면 이 단백질은 많은 산화 코발트 입자를 끌어들여 몸 전체를 덮는다. 바이러스 표면에 단백질을 추가하면 더 많은 산화 코발트 입자를 끌어당긴다. 이러면서 바이러스로 연결된 산화 코발트 나노와이어가 만들어지고, 이는 배터리 전극에 사용될 수 있다.

벨처의 생명공학 과정은 DNA 염기 서열을 주기율표상의 원소와 일치시켜 인공 선택을 빠르게 진행한다. DNA를 조정해 바이러스가 인산철에 붙어버리게 할 수도 있고, 이 코드를 조정해 산화 코발트를 선호하게 할 수도 있다. 이 기술은 주기율표의 어떤 원소에라도 적용될 수 있다. 그와 일치하는 DNA 염기서열을 찾는 게 일일 뿐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벨처가 하는 일은 자연 환경에서 결코 나타나지 않을 듯한 이상적인 미적 특성을 가진 개를 만들기 위해 개 애호가들이 하는 품종 개량과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벨처는 푸들 등의 품종을 개발하는 대신, 배터리를 만드는 바이러스를 번식시키고 있다.

벨처는 바이러스 조합 기술을 사용해 전극을 만들고, 이 전극을 다양한 종류의 배터리에 사용했다. 오바마에게 선보인 배터리는 시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전 모양의 표준 리튬 이온 배터리였고, 이는 작은 LED를 작동하는 데에도 사용됐다. 하지만 벨처는 대부분 과정에 있어 리튬 공기나 나트륨 이온 배터리와 같이 보다 새로운 화학적 방법으로 만들어진 전극을 사용해 왔다. 그 이유는 이미 잘하고 있는 리튬이온 생산자와 경쟁하는 데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벨처는 “현대 기술과 경쟁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라며 “우리는 이때까지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생물학이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대답을 얻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 가지 전망있는 용도는, 바이러스로 고도로 정렬된 전극 구조를 만들어 전극을 통과하는 이온의 경로를 단축시키는 것이다. 대학교 물질 연구실 소장 폴 브라운(Paul Braun)은 이렇게 하면 배터리의 충전과 방전 비율을 높일 수 있는데, 이는 “에너지 저장의 ‘성배’ 중 하나”라고 말한다. 원리적으로는 바이러스 배열을 잘하면 배터리 전극의 구조를 개선하고 충전 속도를 높이는 데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벨처의 바이러스를 이용해 만든 전극은 그 구조가 무작위적이었지만, 벨처와 그 동료들은 바이러스를 보다 질서있게 배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고안 중이다. 이처럼 아직 보완할 부분이 있긴 해도, 그의 바이러스를 이용해 만든 배터리는 시중에 나온 배터리와 비교했을 때 에너지 용량, 사이클 수명, 충전 속도 등의 부분에서 봤을 때 비슷하거나 더 나은 성능을 보였다. 그래도 벨처는 바이러스 조합 기술의 최고의 장점은 친환경적이라는 점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전극 제조는 독성 화학 물질을 쓰고 고온에서 이루어졌다. 반면 벨처가 배터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준비물은 전극 물질, 상온수 그리고 유전공학으로 만든 바이러스가 전부다.

벨처는 “지금 연구팀이 가장 크게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공해를 유발하지 않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전극용 광물이 채굴된 원산지나 전극을 제조할 때 나오는 폐기물 등의 문제를 고려하게 된다.

벨처는 이 기술을 아직 시장에 내놓지는 않았지만, 그와 그 동료들은 이 기술이 어떻게 에너지와 그 밖의 분야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상용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몇 가지 논문이 심사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는 거부했다.)

인간에게 유용한 물건을 만드는 데 쓰일지도 모르는 이 DNA 기반 공정을 벨처가 처음으로 제안했을 때, 그는 동료들로부터의 많은 비판에 부딪혔다. 벨처는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젠 이 아이디어가 더 이상 그리 터무니 없는 생각이라는 말을 듣진 않지만, 그 기술을 연구실에서 현실 세계에 적용시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인디아나 대학교 블루밍턴 캠퍼스 화학 교수 보그던 드라그나(Bogdan Dragnea)는 “기존의 배터리 제조는 저렴한 재료와 공정을 사용하지만, 성능과 확장성 문제를 해결을 위해 바이러스를 조작할 수 있으려면 오랫동안 연구를 해야하고,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최근에 왔어야 바이러스 기반 물질이 잠재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물리적 특성 관점에서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벨처는 이미 바이러스 조합 기술을 바탕으로 두 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2004년에 설립한 캄브리오스 테크놀로지스(Cambrios Technologies)는 바이러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제조 공정을 사용해 터치 스크린에 쓰이는 전자기기를 만들고 있다.  그의 두 번째 회사인 실루리아 테크놀로지스(Siluria Technologies)는 이산화탄소를 석유 화학 제품 제조에 널리 사용되는 가스인 에틸렌으로 바꾸는 과정에 바이러스를 이용하고 있다.  사실 전에 벨처도 태양광 배터리 제조에 바이러스를 써보았지만, 그 기술은 새로 나온 페롭스카이트 태양 배터리와 효율 면에서는 경쟁자가 되지 못했다.

바이러스를 이용해 제조한 배터리 전극이 대량 생산에 필요한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제라소풀로스는 “배터리 생산 시설에서는 수 톤의 물질을 사용하는데, 생물학적 분자로 그 수준에 도달하는 건 그리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 한계가 넘을 수 없는 산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마도 지금까지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혹 전 세계가 바이러스로 움직이는 테슬라를 볼 수 없다고 해도, 나노 생명공학에 대한 벨처의 접근은 전기와 관련이 적은 분야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벨처는 MIT에서 바이러스 조합 기술을 활용해 종양을 찾아내는 나노 입자를 만들려는 과학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의사가 찾기에는 너무 작은 암 세포를 발견하고자 고안된 이 나노 입자들은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암 환자의 사망률을 낮추는 데 획기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직은 요원한 목표이지만, 원리적으로는 이 입자가 암 세포를 죽일 생체 물질로 무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전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봤을 때 바이러스는 죽음과 질병의 전조였다. 하지만 벨처의 연구는 이 DNA로 만들어진 작은 녀석들이 미래에 기여할 게 많다는 걸 보여준다.

<기사 원문>

The Next Generation of Batteries Could Be Built by Viruses


** 위 기사는 와이어드US(WIRED.com)에 게재된 것을 와이어드코리아(WIRED.kr)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엄다솔 기자)
와이어드 코리아=Wired Staff Reporter wiredkorea@wired.kr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RECOMMEN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