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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도 반한 기생충의 '불평등'한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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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도 반한 기생충의 '불평등'한 매력
고급 주택, 높은 언덕, 밝은 조명 등 대조적 장치 그려내

※ 이 기사는 결말 일부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어제(10일),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한국 영화로서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작품상을 거머쥐며 4관왕에 오른 것.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만 나오는 이 영화가 전 세계인의 공감을 산 비결은 무엇일까?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여러 외신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불평등’의 문제를 잘 그려낸 덕분이라고 말한다.

영화 ‘기생충’은 가난한 가족이 부유한 가정에 위장 취직해 그 풍족함에 ‘기생’하는 블랙 코미디 장르로 볼 수 있다. 극을 이끌어나가는 기택이네 가족은 박 사장의 커다란 집에서 일하면서 잠시나마 불우한 배경을 잊고 달콤한 꿈을 꾼다. (그 끝이 아무리 비극적일지라도 말이다.)

봉 감독은 ‘기생충’ 영화를 제작하며 두 가족의 대조적 현실을 표현하고자 다양한 소재와 연출 기법을 시도했다. 많은 사람들이 놓쳤을 ‘기생충’ 영화 속 불평등을 보여주는 장치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사진=2019 CJ ENM CORPORATION, BARUNSON E&A]
[사진=2019 CJ ENM CORPORATION, BARUNSON E&A]

◆ 화려한 주택, 보잘것없는 반지하

극은 기택이네 가족의 반지하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지하 창고를 연상케 하는 습한 곳에서 기택이네 가족은 열심히 피자 상자를 접는다. 방역차가 지나가면 그 연기가 그대로 안으로 들어오고, 술을 거나하게 마신 취객이 창가에서 소변을 보기도 한다. 창살 너머로 보이는 동네의 풍경은 을씨년스럽다. 인심이나 여유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서울 어딘가의 어둑한 달동네다.(스크린에 투영된 우리들 마음이기도 하다.)

이와 대조를 이루는 부유한 박 사장네 집으로 가장 먼저 발을 들이는 건 ‘계획이 있는’ 기우다. 친구에게 과외 자리를 소개받고 찾아간 그 집에서는 돈 냄새가 풀풀 난다. 서울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언덕에 위치한 현대식 2층 주택에 있어 최첨단 방범 시스템은 미덕과도 같다. 성공한 젊은 사업가의 부를 지킬 이 장치는 외부로 부터, 아니 가난으로 부터 자신을 완벽하게 차단한 느낌마저 든다. 갑자기 돈을 많이 벌게 된 일명 ‘신흥 부자’는 유명 건축가의 주택을 인수했다.  

◆ 나는 높게, 너는 낮게

영화 ‘기생충’ 속 가족 간 대조는 물리적 높낮이로도 나타난다. 기택이네 가족은 반지하에, 박 사장네 가족은 위에. 오랫동안 집이 없었던 가정부 문광은 지하 벙커에, 박 사장네 가족은 여전히 위에. 이러한 연출은 아키라 구로사와 감독의 ‘천국과 지옥’ 속 표현과도 유사하다. ‘천국과 지옥’에서는 언덕의 꼭대기에는 돈 많은 이가 살고, 낮은 바닥에는 범죄자 등의 인물이 사는 연출이 나온다.

이밖에도 박 사장 부부의 소파 위 야릇한 장면(?)이 그 예로 꼽힌다. 기택이네 가족은 소파 옆 탁자 아래에 숨어서 그 민망한 상황을 견뎌야 했다. (지켜보는 우리도 마찬가지였고.) 또, 비가 대차게 내린 날 기택이네 가족이 집으로 돌아가고자 한참을 내려가는 장면도 찾아볼 수 있다.

◆ 밝게, 어둡게

조명 또한 영화에서 중요하게 쓰였다. 가난한 기택이네 집에는 창문이 적고 그 크기도 작아서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들어와 봤자 하루 중 고작 15분에서 30분 정도다. 반면 박 사장네 집은 초록빛 정원 전경을 그대로 담은 통창이 집안 구석구석 밝은 빛을 수집 중인듯 보인다. 봉 감독은 영화 리뷰 매체 인디와이어와의 인터뷰에서도 “실제로도 그렇지 않냐. (가난한 사람들은) 창문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봉 감독의 ‘창문 연출’은 영화 ‘설국열차’에도 등장한다. 꼬리 칸에는 창문이 전혀 없지만, 칸을 올라갈수록 창문이 점점 더 많아진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이번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차지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이번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차지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 지상 그리고 반지하의 냄새

기택이네 가족에게서 나는 ‘반지하 냄새’도 영화적 장치 중 하나다. 극 중에서 박 사장 부부는 기택의 "퀴퀴하고 눅눅한 냄새, 가끔 지하철 타면 느껴지는 냄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마 이때 모든 관객이 자신의 냄새도 한 번 맡아보았을 거다.) 그 정체를 알지 못했던 ‘주홍글씨’, 쿰쿰한 냄새를 알아차린 기택은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참고로, 봉 감독과 이하준 미술 감독은 기택이네 집을 촬영할 때 현실감을 살리고자 그 곰팡내까지 재현했다고 한다. 반지하 집에 음식물 쓰레기를 두어 파리와 모기가 꼬이게 하고, 삼겹살을 구워서 기름때도 배게 했다.

◆ 보이지 않는 선

영화는 두 계층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기우가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박 사장의 아내 연교는 정원에서 자고 있었다. 기우는 그 모습을 창문 너머로 바라본다. 문광과 연교 사이에 유리창의 선이 비친다. 문광은 그 선을 넘어 잠든 연교의 머리 위에서 손뼉을 ‘짝’하고 친다. 가난한 문광과 부유한 연교 사이의 ‘선’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기택이네 가족은 신분 상승을 꿈꾸지만, 결국은 쓰라린 좌절을 맛보는 ‘위대한 개츠비’의 곡선을 이룬다. 봉 감독이 사용한 이 다섯 가지 장치는 기생충이길 원했던 한 가족의 비극을 흥미롭게 이끌고 있다.

와이어드 코리아=엄다솔 기자 insight@wir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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