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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92년 오스카 역사를 어떻게 뒤바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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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92년 오스카 역사를 어떻게 뒤바꿨나
아카데미 시상식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 4관왕

호스트(사회자) 없이 진행되었던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기억하시는지? 아무래도 호스트는 필요 없었던 모양이다. 올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오스카)도 호스트 없이 막을 올렸다.

9일(현지시간) 개최된 오스카에서 불미스러운 사고는 없었지만 쏟아지는 비 속에서 스태프들은 초장부터 꽤나 고생했다는 후문이다. 우산을 받쳐 든 촬영 스태프들은 카메라 앵글을 지키고자 씨름하다 보니 가뜩이나 좁은 레드카펫 촬영장이 더욱 비좁아 보였다.

그래도 괜찮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속에서도 오스카에 참가한 스타들은 화려하게 빛났다.

 

[사진=KEVORK DJANSEZIAN/GETTY IMAGES]
[사진=KEVORK DJANSEZIAN/GETTY IMAGES]

나탈리 포트만은 최고의 감독상에 노미네이트 되지 못한 여성 감독의 이름을 새긴 재킷을 입고 레드카펫에 올라 화제가 됐다. 재킷에는 ‘페어웰’의 루루 왕 감독, ‘작은 아씨들’의 그레타 거윅 감독, ‘애틀란틱스’의 마티 디옵 감독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농구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던 스파이크 리는 LA 레이커스 색상에 브라이언트의 번호인 ‘24’가 새겨진 턱시도를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오스카는 여성 보다는 남성, 특히 백인들에게 우호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도 이 공식이 유효할지,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한 아시아 영화의 수상 여부에 따라 판가름날 참이었다.

◆ 최초, 또 최초

수상작 발표가 이어졌다. 이번 시상식은 유독 ‘최초’가 많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비영어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작품상을 수상하며 4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오스카 작품상을 동시에 따낸 영화는 미국 델버트 맨 감독의 ‘마티’ 이후로 최초다.

‘기생충’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사이의 갈등을 극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러한 갈등이 어느 현대 사회에서나 존재한다는 점에서 세계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독특한 연출과 눈길을 사로잡는 디자인으로 이번 시상식 6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봉 감독은 이날 국제장편영화상 소감에서 “오스카가 추구하는 새로운 방향에 박수와 지지를 보낸다”면서 “오늘 밤은 술 마실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너무 잘생겨서 연기가 묻힌다”라는 평을 들어온 브래드 피트는 처음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숱한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그는 조연의 자리에서 마침내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소감 발표 시간이 45초밖에 없다고는 하는데, 이번 주에 전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이 발언한 시간 보다 길군요”라며 정치적 견해를 (짧지만 분명하게!) 드러냈다.

브래드 피트가 등장했던 영화인 ‘원스 어폰 어 타임 … 인 할리우드’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1960년대 미국 할리우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넷플릭스 ‘결혼 이야기’에서 열연한 로라 던도 오스카 시상식에서 첫 여우조연상을 따냈다. 그녀는 수상 소감을 통해 “어떤 사람들은 영웅을 못 만나보지만,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라면 그 영웅을 부모로 얻는다고 생각해요”라며, 부모인 다이안 래드와 브루스 던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 치열한 경쟁

작품 간 흥미진진한 경쟁도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 인 할리우드’는 ‘기생충’을 제치고 미술상을 차지했다. 뉴욕 타임스 비평가 웨슬리 모리스는 “당연히 ‘기생충’이 수상할 줄 알았다.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고 평가했다.

의상상은 ‘작은 아씨들’의 재클린 듀런에 돌아갔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상을 탄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뉴욕 타임스 기자 카라 버클리는 “플로렌스 퓨의 파리 의상 하나만 보더라도, 140년 전으로 돌아가 우아하고 돈 많은 대고모인 메릴 스트립을 보고 싶어 진다”고 현장 코멘트를 남겼다.

국내서 어마어마한 관객을 모은 ‘겨울왕국2’는 제 처지를 노래한 듯한 히트곡 ‘숨겨진 세상(Into the Unknown)’을 남긴채 후보작에도 오르지 못했다. ‘드래곤 길들이기3’, ‘내몸이 사라졌다’, ‘클라우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등 기라성 같은 작품과 경쟁에서 승리한 ‘토이 스토리4’는 결국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 #OscarSoWhite

‘#너무하얀오스카(#OscarsSoWhite)’라는 해시태그는 몇 년 동안 전 세계 SNS에서 돌았다. 오스카에서는 지난 수상 결과를 봤을 때 서양 남성, 그것도 백인에게만 상을 준다는 게 그 시작이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일부는 시상 평가위원회의 투명하지 않은 판정을 ‘너무 하얀’ 원인으로 꼽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지금까지도 어떤 사람들이, 어떤 근거로 어떻게 투표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위원회의 판정이 보수적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 와이어드 UK 기자 알렉스 리는 “오스카가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평가위원회의 멤버가 누구이며 어떻게 투표하는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번 오스카만큼은 ‘기생충’과 다양한 인종과 성별이 출연한 넷플릭스 영화 여럿을 후보에 올렸으니 ‘덜 하얗다’고 평가해도 될까. 실제로 이날 영화 음악 부문 시상을 맡은 영화배우 오스카 아이삭은 “오스카도 이제 별로 하얗지 않다”고 언급했으나, 일부 네티즌은 여전히 이에 동의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오스카의 이번 선택이 인종과 문화를 넘어선 보편적 '공감'이었다는 점에서 한층 진일보했다는 평가다.     

와이어드 코리아=엄다솔 기자 insight@wir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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